세계 반도체업계의 지각변동이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3강 혹은 4강 체제로 예상됐던 내년 이후 D램 반도체 시장판도는 이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투 톱 체제로 급반전하는 모습이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를 주도하는 곳은 바로 마이크론이어서, 마이크론과 하이닉스의 제휴 협상도 새로운 단계를 맞게 됐다.■새 판도
올 하반기부터 인피니온+도시바 합병이 논의되고, 마이크론+하이닉스의 전략적 제휴협상이 진행되면서 향후 D램 시장은 삼성전자, 마이크론+하이닉스, 인피니온+도시바의 3강(히타치+NEC의 엘피다를 포함할 경우 4강) 체제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18일 인피니온+도시바 협상이 결렬되고, 도시바 미국 공장을 마이크론이 인수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마이크론으로선 도시바와 하이닉스를 장악할 경우 시장점유율이 30%를 훌쩍 넘어서기 때문에 향후 판도는 시장을 30%이상씩 양분하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대결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가장 당혹스런 쪽은 인피니온. 인피니온은 지난 주 가장 먼저 12인치 웨이퍼 양산체제에 돌입하는 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마이크론으로부터 ‘뒤통수’를 맞고 경쟁에서 일단 밀려난 형국이다. 인피니온은 윈본드와 프로모스 등 군소 대만업체들과 제휴를 추진 중이지만, 세계판도에 큰 변수가 되기는 어려운 상태다.
■하이닉스+마이크론의 향배
마이크론의 도시바 공장인수가 하이닉스+마이크론의 제휴협상에 큰 걸림돌은 아니다. 도시바 미국공장은 하이닉스 유진공장의 6분의1 수준인데다 공정기술 역시 0.2~0.25㎛급으로 노후시설에 속해 하이닉스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마이크론이 도시바 공장을 인수한 것은 인피니온을 ‘왕따’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마이크론의 도시바 인수직후인 19일부터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박종섭(朴宗燮) 하이닉스사장과 스티븐 애플턴 마이크론 회장간 ‘고위급 협상’에서 주목할 포인트는 합병이다. 이는 지금까지 제휴형태로 거론됐던 기술협력이나 일부 설비(유진공장)의 인수, 지분 맞교환 등 ‘스몰 딜(small deal)’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애플턴 사장은 이날 분기실적 발표석상에서 “하이닉스에 대한 소수지분을 획득하는 것은 마이크론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빅 딜(big deal) 가능성을 시사했다.
채권단 관계자도 “세계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마이크론이나 채권조기회수가 시급한 채권은행단 모두에게 합병은 가장 이상적 대안”이라며 이번 협상이 단순 제휴차원이 아닌 합병협상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내비쳤다.
하이닉스는 최근들어 ‘독자생존설’ ‘삼성전자 제휴설’ 등을 흘리면서 유리한 협상고지 점령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도시바 라인 인수를 통해 인피니온을 따돌린 마이크론의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다는게 일반적 분석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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