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충청도 계룡산 근처의 시골 마을이었다.우리 마을은 사방이 높지않은 산으로 둘러 쌓인 작은 분지로서 아늑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으며,가구수도 20여 호에 불과한 아주 적은 규모였다.
나는 어린 시절을 그 작은 마을이 세계의 전부인양 생각하면서 주로 그 마을 안에서만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다섯살 때의 봄으로 기억되는데, 동네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려 뒷동산의 정상에까지 오른 일이 있었다.
그 정상에서 우리 마을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우리 마을을 내려다 보는 순간,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충격이라기보다 경이로움의 경험, 그것이었다.
그곳에서 쾌 크다고 여겼던 우리 집도 형편없이 작게 보였으며, 꽤 넓다고 생각했던 우리 집 마당의 넓이도 나의 조그만 손바닥보다도 더 작게 보였다.
또한 동네 어른들의 모습도 어린 애보다 더 작게만 보였다. 더욱 한 없이 크게만 보였던 우리 마을이 장난감 같은 조그만 집들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세계에 불과하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예순을 바라보게된 오늘날의 시점에서 과거의 삶을 되돌아 볼 때 나의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도 물론 있었지만, 어릴 적의 이 경험은 나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지금도 그때 내 눈에 비친 우리 마을의 모습이 마치 사진에 박힌 화면처럼 생생하게 회상된다.
좀더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이후 내가 성장하는데 평생의 화두로서 받아들여졌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경험을 계기로 하여 나와 나에 관련된 일들이 형편없이 작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좀더 넓고 큰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내가 더욱 높은 위치로 오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뒤 자주뒷동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 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계룡산을 비롯하여 더 높은 산에 올라 주위를 내려다 보는 일로 이어졌다.
이런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역사와 지리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어 어린 시절에는 선친에게서 통감을 배우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으며, 우리나라와 세계지도를 그리는 일을 즐김으로써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갔다.
이러한 나의 지적 호기심은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마침내 역사를 전공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는데, 나는 지금도 변함없이 나의 눈의 높이와 나의 눈에 보이는 세계의 넓이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최병헌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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