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김수연(5)양이 조명에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찡그린다. 옆에 있던 비장애아 엄지연(5)양은 목이 아프다고 엄마에게 칭얼거린다.하지만 진행자 짜잔형 권형준이 “우리 악수할까요”라고 외치자 금새 아이들의 표정이 바뀐다. 수연이와 지연이는 어느 새 친구가 된 듯 해맑게 웃으며 악수를 한다.
14일 오후 4시 서울 EBS 스튜디오 ‘방귀대장 뿡뿡이’ 프로그램 녹화장.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함께 출연하는 유아 프로그램이 방송 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자리였다. EBS 팀은 1년 전부터 이를 기획해왔다.
내년 1월 16,17, 23일에 방송될 ‘방귀대장 뿡뿡이’ 는 장애아 8명과 비장애아 4명, 그리고 이들의 어머니가 출연한다.
이날 놀이와 방송 진행은 특수교육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구성됐다.
출연자들은 이날 6시간 동안 빈 상자를 이용해 도미노 게임을 벌이는 ‘해님 반짝’ 과 종이 블록으로 집을 짓는‘돼지 집을 지어주세요’, 그리고 아이와 어머니가 하나의 옷을 입는 게임인 ‘엄마와 함께’ 등 다양한 코너를 마치 놀이하듯 재미나게 녹화했다.
수연양의 어머니 여명주(35)씨는 “늘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이 나오는 장면을 거의 볼 수 없다. 아이가 즐겨보는 유아 프로그램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출연섭외를 받고 사실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아이가 녹화중 울거나 말썽을 부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너무나 즐겁게 잘해주어 기쁘다”고 말했다.
물론 이날 녹화는여느 프로그램에 비해 NG도 많이 나고 제작 시간도 오래 걸렸다.
보통 6시간 녹화하면, 5회 방송 분의 제작이 가능한데 이 날은 4회분 밖에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작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남선숙 PD는 “장애아와 비장애아를 떼어 놓으려고만 하지말고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첫걸음이다. 오늘 많은 자신감을 느꼈다. 내년부터는 주 2회 정도 장애아와 비장애아의 통합교육을 시도하는 유아 프로그램을 제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분리 정책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우리 복지정책과 교육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특수시설이나 특수학교에 장애인들을 분리해 수용하거나 교육을 시킴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편견만 부풀린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통합복지ㆍ통합교육을 실시한 지 오래. 심지어 국내 방송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분리를 넘어, 각종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을 소외해왔다.
이날 시도된 장애아와 비장애아의 통합 유아 프로그램 ‘방귀대장 뿡뿡이’ 는 제작진의 인식과 의지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밑거름임을 보여주었다.
녹화장에서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서로 부둥켜 안으며 이별 인사를 하는 모습에는 어른들이 갖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배국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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