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문단은 뜨거웠다. 문학 내외적인 문제들로 격렬한 논쟁이 이어졌다. 소수의 화려한 작가 대신 신인들의 각개 약진이 돋보인 한 해이기도 했다.문학논쟁의 불을 당긴 것은 고은(68) 시인이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기고한 ‘미당 담론’이었다.
고시인은 미당 서정주의 시 세계를 “깊은 자기 성찰이나 회개의 아픔이 없이, 능란한 자기 합리화와 점액질의 언어기교만 보인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즉각 반론들이 이어졌다. 훼절(毁折) 문제는 미당 생전에도 제기됐지만 이번에는 작품 세계에 대한 논란으로 번졌다.
미당의 친일 행위나 신군부 찬양등 추문의 흔적을 시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주장과, 미당의 작품은 그 자체로 한국시의 커다란 성과라는 반박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소설가 이문열(53)씨를 둘러싼 ‘책 반환 논쟁’도 뜨거웠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신문 칼럼으로 비판한 이씨의 홈페이지에 “책을 반송하겠다”는 네티즌의 글이 올라왔다.
이씨는 “현행법상 최고 이율을 붙여 반환하겠다”고 답했다. 사이버 공방으로 인터넷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씨는 자신의 이 체험을 그대로 소설로 옮겨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라는 단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는 이른바 ‘문학권력’ 논쟁이 다시 가열됐다. 평론가 권성우(38)씨가 “‘창작과 비평’도 진보 권위주의로 물든 문학권력”이라고 하자, 창비 측은 인터넷 반론을 게재했다. 권씨는 한편으로 평론가 남진우(41)씨와 설전을 벌였다. 두 사람의 논쟁의 출발점은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학동네’ 편집위원인 남씨가 ‘문학동네’가 문학권력으로 비판받은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권씨는 ‘황해문화’ 가을호에 반론을 게재했으며, 이들의 논쟁은 문예지와 단행본을 통해 계속되고 있다.
9월 이어령(67) 김윤식(65) 교수의 정년 퇴임은 한국 현대문학의 한 장이 넘어가는 ‘사건’으로기록됐다. 최인훈(65)씨의 소설 ‘광장’이 출간 40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했다.
‘스타’ 작가는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실험의식을 발휘한 한 해이기도 했다.
중견작가들의 힘은 돋보였다. 황석영(58)씨가 ‘손님’, 김원일(59)씨가 ‘슬픈 시간의 기억’, 윤후명(55)씨가 ‘가장 멀리 있는 나’, 윤대녕(38)씨가 ‘미란’을 발표했다.
은희경(42)씨가 ‘마이너 리그’, 신경숙(38)씨가 ‘바이올렛’, 공지영(38)씨가 ‘수도원 기행’을 베스트셀러에 올리면서, 여성 트로이카의 저력을 보여줬다.
천운영(30)씨의 ‘바늘’과 윤성희(28)씨의 ‘레고로 만든 집’은 신예 여성작가들의 개성적 글쓰기를 보여준 소설집이었다.
제34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오수연(37)씨의 작품집 ‘부엌’은 우리 문학의 공간을 한층 넓혔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소설가 강신재, 동화작가 정채봉씨가 올해 세상을 떠났다.
정씨는 “문학인의 사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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