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12월18일 독일의 정치가 빌리 브란트가 뤼베크에서 태어났다.1992년 몰(歿). 브란트는독일 통일의 기초를 다진 동방정책의 지휘자였다.1969년 10월에 발족한 브란트 정권은 아데나워 정권 시절부터 서독이 외교원칙으로 고수하던‘할슈타인 원칙’(소련 이외의 동독 승인국과는 외교관계를 가지지 않겠다는 동독 고립화 원칙)을 포기하고 동유럽 여러 나라에 대한 접근 외교를 펼쳤다.
브란트는 1970년3월(동독의 에르푸르트)과 5월(서독의 카셀)에 동독 총리 빌리 슈토프를 만난 뒤 그 해 8월 서독-소련 조약과 12월 서독-폴란드 조약 등 이른바 동방조약을 체결하면서 동방정책의 시동을 걸었다.
그에 이어 1972년 6월에는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 전승 4대국에 의한 베를린협정이 체결됐고,그 해 12월에는 동서독 기본조약이 조인됐으며, 이듬해에는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불가리아가 차례로 서독과 국교를 회복했다.
이 동방정책은 그 뒤에도서독 외교 정책의 근간을 이루며 계속되다가 1990년 이 정책의 궁극적 목표인 독일 통일이 이뤄짐으로써 마무리됐다.
브란트는 16세에 독일사회민주당에 입당해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1933년 나치스 정권이 수립되자 노르웨이로 망명해서 귀화했고,나치스의 손길이 그 곳까지 뻗치자 다시 스웨덴으로 망명해 반나치 운동을 벌였다.
전후에는 노르웨이 국적으로 베를린 주재 노르웨이 외교대표부에서잠시 일했다. 1948년 독일 국적을 회복한 브란트는 1949년 사회민주당 소속 서베를린 시의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고, 1957년 서베를린 시장이된 데 이어 1964년에는 사회민주당 당수가 되었다.
그는 동방정책을 통해 동서 긴장완화에 애쓴 공로로 197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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