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2층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실. 보기에도 딱한 장면이 연출됐다.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 유족 등으로 구성된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 회원 20여명이 규명위의 미진한 활동에 항의, 위원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국민연대 관계자들은 “422일간의 국회 앞 농성 등 유가족들의 피눈물로 만든 위원회를 유가족들이 또 다시 거부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분루를 감추지 못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
국민적 여망속에 진행되고 있는 ‘과거사 바로잡기’작업이 좌초위기를 맞고 있다. 이 작업의 핵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의 활동이 관련기관의 비협조, 솜방망이 뿐인 권한 등으로 ‘이름 뿐인 위원회’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반민특위의 재판(再版)’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규명위 내에서 1980년 녹화사업 조사를 놓고 내홍이 불거졌던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검ㆍ경과 국방부에서 파견된 직원 8명이 녹화사업 전반에 대한 조사방식에 반발, “친정에 칼을 대라는 것이냐”며 원직 복직을 요구했고, 재야출신인 상관은 사퇴했다.
규명위 관계자는 “파견자들의 비협조도 문제지만, 소환권과 강제수사권도 없어 조사가 곳곳에서 막히고 있다”며 “이 상태로는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규명위의 활동은 매우 실망스럽다. 규명위의 조사기간 만료일은 내년 4월 20일. 불과 4개월여 남겨 놓고 있지만 당초 진정 등에 따라 조사키로 했던 83건의 17%인 14건만을 조사, 종결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나마 규명위가 민주화관련 타살로 정식 인정, 유일하게 보상심의를 요청한 ‘박영두씨 사건’(1984년 청송교도소 복역 중 고문사) 마저 국무총리실 산하 민주화보상심의위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기 힘들다”며 보상판정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규명위 측은 “보상이 안되면 위원 전원이 사퇴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두 위원회가 의견충돌을 보일 경우 조정할 제도적 장치가 없어 이들 기관이 공중분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화보상심의위
보상심의위도 개점휴업 상태다. 이미 2,441명을 민주화 관련자로 인정했지만, 관련법이 국회에서 묶여 보상을 전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상심의위는 당초 올 예비비에서 보상금 지급예산 96억원을 확보, 연내 보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심의위와 일부 의원들간에 이견이 빚어지면서 국회처리가 늦어져 예산이 국고로 환수될 위기에 처해져 있다.
희생자 유족들은 “국회처리 지연은 이 나라가 민주화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에 뜻이 없다는 방증”이라며 “현 정부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소리높이고 있다.
정영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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