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밥 먹여주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지만, 그건 문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문화를 마치 먹고사는 게 다 해결된 다음에나 즐길수 있는 무슨 유희활동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에 보면 문화를 우선 "인지(人智)가 깨고 세상이 열리어 밝게 됨"이라고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화란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닌가. 한 마디로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아니던가. 그런데 우리는 왜 자꾸 문화를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두려 하는 것일까.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떤 한사람의 새로운 발견이나 기발한 고안으로 말미암아 사회 전체의 생활양식이 변한 사례들을 흔히 볼 수있다.
또는 어느한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들끼리만 지키던 풍습이 다른 집단으로 전파되어 그곳의 풍습으로 자리잡은 예들도 종종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한 문화권이 다른 문화권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그레엄벨이 전화를 발명한 이후 변화된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라.
며칠씩 아니 때론 몇달씩 걸리는 편지를 이용해야만 겨우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시절에 비해 장거리 전화와 삐삐는 물론 영상전화와 컴퓨터 통신에 이르기까지 우린 정말 새로운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지극히 인본주의적 사고를 지닌 이들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동물 세계에도 문화가 있다.
서로 다른지역에 사는 동물들이 표면적으로는 비슷하나 전혀 다른 문화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관찰된다.
아프리카에 사는 침팬지들의 이른바 '이파리 뜯기'행동이 그 좋은 예다. 언제부터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뭇가지로부터 이파리를 소리내어 뜯어 내는 이 행동은 몇몇 침팬지사회에서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다.
흥미로운 것은 집단에 따라 동일한 행동이 전혀 다른 기능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탄자니아의 마할리 침팬지들은 이 행동을 구애행위의 일부로 발전시켜 암컷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데 비해, 기니의 보수지방에 사는 침팬지들은 기분이 상했거나 불만에 가득찼을 때 이러한행동을 보인다.
똑같은 행동이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상이한 용도로 쓰이는 예는 우리 인간사회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일이다.
동물들에게도 도구를 사용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첫증거는 제인 구돌박사에 의해 침팬지에서 발견되었다.
1960년 이렇다할 동물행동학의 기초지식도 없이 겨우 스물 여섯의 나이에 아프리카로 가서 야생침팬지들을 연구하기 시작한 구돌 박사가 올린 첫 연구 개가였다.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조심스레 흰개미굴 속으로 집어 넣어 흰개미들이 그걸 물면 끄집어내 훑어먹는 것을 처음으로 관찰한 것이다.
구돌 박사가 관찰한 동부 아프리카의 침팬지들과 달리 일본학자들이 연구한 서부의 침팬지들은 돌을 모루와 망치로 사용하여 식물의 견과를 깨먹을 줄안다.
비교적 평평한 표면을 가진 커다란돌 위에 야자수견과를 올려놓고 다른 돌로 내리쳐 깨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구돌 박사가 관찰한 침팬지들은 지금도 돌을 도구로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동부 침팬지들은 서부침팬지들에 비해 문화의 척박함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요사이 조만간 개각이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닌다.
국민이 김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것은 인권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대선 때 아내의 손을 잡고 연극을 보러 다니는 모습에 드디어 우리에게도 드디어 문화대통령을 가질수 있는 날이 오는가 보다 하고 기뻐했다.
그러나 문화중흥에 관한 우리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번 정권내내 문광부 장관자리는 정치인들의 디딤돌로 사용되었다.
경제회생을 최우선 사업으로 삼은 대통령이 어찌하여 문화가 밥 먹여준다는, 그것도 아주 화려하게 먹여준다는 사실을 이처럼 간과할수 있었을까.
아마도 발등의 불이 너무 급했던 까닭이리라. 하지만 이젠 좀 멀리 내다볼 여유를 가져도 되리라 본다.
이제 월드컵이 얼마남지 않았다. 88올림픽에 이어 또 다시 세계에 우리를 알릴 절호의 기회임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지금 우리가 88올림픽의 굴렁쇠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진지하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세계에 내보일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오천년 문화민족이 세계를 향해 자신있게 펼쳐 보일것은 결국 문화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월드컵 기간 동안에 반짝하고 마는 한탕 장사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때 세운 이미지로 두고두고 우려먹어야 하지 않은가.
개각할 때마다 모든 장관들을 다 갈 필요는 없다. 내가 하는 일과 관련이 있는 부서만 보더라도 환경부장관과 과기부 장관은 이념도 확고하고 열정도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광부만큼은 이번 기회에 제대로된 장관이 들어서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문화예술 관련기관이나 사업을 이끌어본 경험이 있고 진정 문화를 알고 사랑하는 문화인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서울대생명과학부 교수
jccho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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