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증권업계에선 삼성증권의 행보가 주목을 받았다. 6월 취임한 황영기(黃永基ㆍ49) 사장이 ‘정도(正道)영업’을 선언한 이후 삼성증권은 항상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과거 잘못된 영업관행을 단절하고 새로운 변화를 주도한 황 사장의 경영철학이 이끌어 낸 성과다. “한번 해보라지, 잘 될까”라는 냉소적 시각도 없지 않았지만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직원들에게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자기고백을 받았고, 약정액을 인사고과에 반영하던 관행도 버렸다. 그는 증권사와 고객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정도영업의 요체라고 했다.
"투자자들이 증권사를 보는 시각은 한마디로 '카지노 멘탈리티'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도박장을 제공하는 하우스라는 것이죠. 고객은 돈을 잃어도 증권사는 수수료를 받아서 돈을 버니까 잘못되면 '물어내라'고 나옵니다. 증권사가 고객관리를 그 만큼 못 해왔다는 얘기죠."
정도영업 선언 이후 삼성증권의 약정액 시장점유율은 10%대에서 9%대로 낮아졌다. 하지만 황 사장은 ‘거품이 빠지는 증거’라며 오히려 바람직한 결과로 받아들였다.
그런 황 사장이 최근 ‘품질경영’이라는 새로운 기치를 내걸었다. 정도영업을 내세운 지 6개월 만에 또 무슨 소리?
“직원들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정보의 품질을 회사가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조업체에 비유하자면 회사가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서 직원들에게 판매를 강요하고, 수수료만 챙기는 비정상적인 영업을 해왔던 겁니다."
정보의 품질을 높이지 않으면 직원들이 사제 정보에 의존해 무리한 영업을 하게 되고, 결국 정도영업도 구두선에 그친다는 얘기다. 삼성증권이 최근 증권업계 ‘최고’의 분석가와 전략가들을 스카우트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황 사장은 지난 달 임원 5명을 미국에 보내 와튼 스쿨 등 미 최상위 대학 출신 MBA 30여명을 스카우트했다. 당초 10여명을 예상했으나, '욕심나는' 인재가 너무 많아 선발 인원을 대폭 늘렸다는 설명이다.
황 사장은 “중장기 투자에 익숙한 외국인들 사이에선 삼성증권의 리서치 수준이 국내 증권사 중 발군의 1위로 평가 받고 있다”며 “앞으로는 일반 투자자들을 위해서도 쉽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사장의 이 같은 행보에는 업계 선두주자로서의 자신감이 배어있다. 국내 다른 증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시야를 세계로 돌리겠다는 장기적인 비전을 읽을 수 있다. “지금처럼 증권사들이 위탁 수수료 따먹기에 안주해선 세계적인 증권사들과 경쟁할 수 없습니다.
하루 아침에 될 일은 아니지만, 투자은행업무나 종합자산관리 같은 선진적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해야 합니다.”그는 정부가 제도개선 등 직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기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온 최고경영자(CEO)로 통한다. 정도영업과 품질경영은 그의 이러한 소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정도'와 '품질'은 소신을 경영에 접목해 증권업을 선진화하기 위한 ‘양 날의 칼’인 셈이다. 그의 소신이 증권업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지 기대된다.
김상철기자
sckim@hk.co.kr
■황사장은
▽약력
-서울고, 서울대 상대 졸업
-영국 런던대학(LSE) 경제학 석사
-파리바은행 서울지점, 뱅커스트러스트 도쿄지점 아시아 담당 부지점장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국제금융팀장, 인사팀장
-삼성전자 자금팀장
-삼성생명 전략기획실장, 투자사업본부장(전무)
-삼성투신운용 사장
-금융발전심의회 위원(현재)
▽취미ㆍ운동
만능 스포츠맨, 학창시절 테니스 동호회 활동, 골프는 가끔,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시속 120㎞의 빠른 볼을 스트라이크 존에 정확히 집어넣는 멋진 시구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주량
소주 2병, 폭탄주 7잔, 집에서도 가끔 술을 즐기며 소주에 삼겹살을 제일 좋아한다.
▽가족관계
부인 윤규희(尹奎囍ㆍ49)씨와 군입대한 아들(22), 대학생인 딸(20)
■삼성증권은
삼성증권의 13일 현재 주가는 4만7,500원이다. 삼성증권이 여러 면에서 업계 선두라는 데 이견은 없지만 특히 주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위 그룹(1만4,000~1만7,000원대)과 무려 2~3배의 차이가 난다.
수익성이 좋다는 이유도 있지만 업종 대표주로서 투자자들의 기대가 그 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삼성증권은 영업면에서 지난 해 1월 이후 업계 1위로 부상, 지금까지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11월 현재 주식 약정 부문 시장점유율은 9.5%로 여전히 1위다. 지난 해 매출액(영업수익)은 1조2,174억원, 순이익은 1,943억원이며 올 상반기(4~9월) 순이익은 860억원(세전)이다.
삼성증권은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현재 외국인 지분율은 45% 수준. 7월에는 ‘파이낸스아시아’와 ‘유로머니’에 의해 최우수 증권사로 선정됐다. 삼성증권은 내년에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92년 11월 삼성그룹이 국제증권을 인수해 사명을 바꾼 이후로 치면 10년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증권이 단기간에 정상에 오른 것은 삼성이라는 네임밸류에다 외환위기 이후 일부 상위권 증권사가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시장확대의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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