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제교류재단 주최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민간 문화외교를 담당해 온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이인호ㆍ李仁浩)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13, 14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한국과 세계의 만남’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대회 참석차 내한한 후지이 히로아키(藤井宏昭) 일본국제교류기금 이사장, 팀 그로서 뉴질랜드 아시아 2000 파운데이션 이사장, 리처드 워커 전 주한 미국대사는 13일 회관에서 이 이사장의 사회로 특별 좌담회를 갖고 21세기 문화교류의 전망 등에 대해 토론했다.
▲이인호= 이 자리에는 저를 포함해 네 나라에서 문화교류를 맡고 있는 분들이 나왔습니다. 우선 인터넷 등으로 국제적 교류ㆍ접촉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들 교류재단의 역할은 어떤것인 지 말씀해 주시지요.
▲ 후지이 히로아키= 지구촌은 정말 작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호의존성이 증가하는 동시에 여전히 서로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재단과 같은 비정부단체를 통한 사람과 사람간의 이해, 문화교류가 더 확대돼야 합니다.
▲리처드 워커= 국제교류재단이 강조해야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인터넷시대에 오히려 그 관계가 소홀해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만남과 서로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욱 활성화돼야 합니다.
▲팀 그로서= 세계화 과정에서 경제적, 정치적 발전은 이루어졌지만 문화적 교류, 문화외교는 매우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미국 9ㆍ11 테러 참사는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문제의 근원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 이해를 포함한 근본적인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인호= 현대는 여행과 매스컴의 발달로 인한 정보의 과다 제공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오히려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교류가 주로 상업적으로만 이루어지는 측면도 있지요.
▲워커= 서구문화, 특히 미국문화는 제국주의적인 면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그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미국에 대해서는 ‘다른 문화도 우리에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해시켜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동아시아와 관계를 맺어왔는데 다른 나라의 문화가 정말 미국에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로서= 문화의 다양성을 복원하고 유지하는 일은 기술의 발달과 경제적 성장으로 오히려 쉬워졌습니다.
뉴질랜드의 경우 사라진 고유문화를 적은 비용으로 복원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란 문화 다양성이라는 개념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후지이= 한편으로는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한편으로는 창조해야 합니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의 현대문화를 아주 좋아합니다.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지요.
최근 일본에서 한국문화 축제가 열렸을 때 정원 300명을 훨씬 넘는 1,0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이인호= 일본국제교류기금은 최근 서울사무소를 개설했지요.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할 예정이신지요.
▲후지이= 우선 한국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것입니다. 또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교사가 상호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2주간 한국을 다녀온 일본 교사들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국 교사들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워커= 1992년 로스앤젤레스(LA)폭동 때 한국과 미국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국 흑인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효과가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이 3~4주 동안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지낸다면 엄청난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인호= 뉴질랜드 아시아 2000파운데이션 재단은 아시아 지역과의 교류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로서= 역사가 오랜 한국과 일본, 혹은 미국이 문화를 수출하고 우리는 아시아 문화를 수입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국으로부터 탯줄을 너무 늦게 끊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험이 없어 교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문화를 수입하려고 합니다.
문화적 관용을 바탕으로 다양한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인호=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자원이 제한돼 그 동안 주로 대외활동에 치중해 왔습니다만 이제는 문화 수입과 보급의 필요성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어떻습니까.
▲후지이= 저희도 그 동안 대외활동에 치중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문화의 공동창출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로서= 지적인 교류뿐 아니라 대중적인 문화교류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에서는 정기적으로 아시아 요리 경연대회를 엽니다.
음식을 이해하는 것은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지요.
▲후지이= 상업적인 이유로 부진한 문화활동분야는 재단이 대신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인이 아프리카나 중동 국가의 영화를 잘 볼 수 없다면 재단이 보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인호= 9ㆍ11 테러 참사를 접하면서 역사학자로서 정말 수치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무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그로서= 특정한 민족이나 문화의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면에서 테러리즘을 간단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들도 높은 교육을 받았으며, 종교적 소신이 있는 것입니다.
▲워커= 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미국에 대한 세계의 저항감은 미국의 문화적 생산이 세계 도처에 너무 많이, 폭 넓게 보급돼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 문화의 상업적인 요소를 줄이고, 이해를 증진시켜 나가는 방향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독일 작가는 저서에서 “미국은 이해하기 힘들다. 영토적인 제국주의가 아니라 문화적인 제국주의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후지이= 지금의 ‘세계화’는 ‘미국화’와 실제로 상당히 비슷합니다. 그러나 전세계 사람들이 미국을 증오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미국은 전세계 사람들이 부럽게 바라보는 희망의 국가이기도 합니다.
▲워커= 미국인들은 미국 것을 좀 줄이고, 미국에 도움이 될 만한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의 경우 한국과의 관계가 저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인호= 한국의 국제교류를 강화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 재단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 조언을 해주신다면….
▲워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100년이상 중국과 일본의 동생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한국은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재단이 격월로 발간하는‘코리아 포커스’ 등 한국을 알리는 자료는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한국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마련해야 합니다. 한ㆍ일, 한ㆍ미 관계에서 긍정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추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그로서= 뉴질랜드 사람들은 중국과 일본의 중요성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와 한국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많은 뉴질랜드인이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지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인 노력의 결과인 셈이지요.
▲후지이= 한ㆍ일간에 좀 더 보완하고 싶은 것은 교사 교류 같은 인적교류를 확대하는 일입니다.
▲그로서= 전통적 아시아냐, 현대적 아시아냐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습니다.
둘 다 중요하지만 우려하는 것은 (한국은)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항상 전통적인 것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인호= 나름대로 조화시키려고 노력하고있는 데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워커= 미국인들은 아시아 문화를 ‘아시아 문화들’로 통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한국문화만큼 컴팩트(compact)한 문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문화의 독특함을 존중해야 하겠지요.
▲후지이=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출과 수입의 균형, 전통과 현대의 균형 등등 말입니다. 최근 요코하마 비엔날레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작가들이 현대적인 예술축제를 펼쳤습니다. 거기서 다양성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일본인이 관람했고, 그 동안 경험하지 못한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인호= 오랜 시간 값진 말씀 감사합니다.
■좌담 참가자 약력
◆이인호(李仁浩)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65세. 미국 하버드대 박사(역사학), 서울대 교수, 주 핀란드 대사, 주 러시아대사 역임. 저서 ‘러시아 지성사 연구’ 등.
◆후지이 히로아키(藤井宏昭)일본국제교류기금 이사장
68세. 미국 앰허스트 컬리지 졸업, 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 주 영국 대사 역임.
◆리처드 L. 워커 미국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
79세. 예일대 박사(국제관계학), 예일대 교수, 주 한국 대사 역임. 저서 ‘한국의 추억’ 등.
◆팀 그로서 뉴질랜드 아시아 2000 파운데이션 이사장
51세. 뉴질랜드 웰링턴빅토리아대 졸업, 주 인도네시아 대사 역임, 2002년 뉴질랜드 주 WTO(세계무역기구) 대사 부임 예정.
/정리=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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