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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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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워싱턴

입력
2001.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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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12월14일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67세로 작고했다. 워싱턴은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버지니아주의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독학으로 토지측량관이 됐다.

버지니아 대표로 1774년과 그 이듬해의대륙 회의에 참가했고, 이 회의에서 영국에 대한 무력 항쟁이 결정된 뒤 독립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대륙회의는 아메리카 열세 식민지의 대표자 회의를 말한다. 이 회의는 미국 독립혁명시기에 군사ㆍ외교ㆍ경제에 걸쳐 열세 식민지의 통일된 행동을 지도한 식민지 최고 의결 기구였다.

대륙회의가 열리게 된 계기는 1774년 3~6월영국 의회가 제정한 ‘참을 수 없는 법들’ 이다.

이 법들의내용은 보스턴항을 폐쇄하고, 매사추세츠 식민지의 자치를 정지시키며, 식민지인이 고소한 영본국의 관리나 군인들의 재판을 본국에서 한다는 것 등으로,식민지인들로서는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법들이었다.

이 악법은 이내 독립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미국 독립전쟁의 분수령은 1781년의 요크타운전투였다.

콘월리스가 지휘하는 요크타운의 영국 본국군을 워싱턴이 이끄는 식민지군이 포위하고 해상에서 프랑스 함대가 영국 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영국에굴욕적인 패배를 안긴 이 전투를 통해서 식민지군의 군사적 승리는 결정적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해인 1789년에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재임 중인 1793년에 일어난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에서 중립을 선언함으로써 유럽의 분쟁에는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수립했다.

이 원칙은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워싱턴은 1796년 3선 대통령으로 추대됐지만 민주주의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이유로 고사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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