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전쟁이 마무리 단계로 가고 있다.그런데 수 주 전부터 확전론이 제기되는 것으로 보아, 최초의 개전 사유였던 오사마 빈 라덴의 체포 또는 사살은 더 이상 큰 비중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적어도 논리적으로 볼 때 테러리스트 수괴의 제거 또는 조직의 무력화가 그 자체로 종전 사유임에도, 이와 무관하게 확전론이 오히려 세를 얻어 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부시 정권 초기 내걸었던 '미국식 국제주의' 의 본질이 '일방주의'가 아니었나 다시금 생각케 한다.
국제사회가 무어라고 하든, 아프간 민중이 무엇을 원하든 내 좋은 대로 하겠다는 것아닌가. 혹자가 이를 미국의 '탈레반화'라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싶다.
사실 이 번 전쟁의 목적, 규모, 방식과 관련해 개전 초기부터 미 행정부내에는 2개의 노선간에 치열한 '전쟁'이 있었다.
국방성 부장관 월포위츠를 얼굴마담으로 이른바 '새로운 미국의세기 프로젝트(PNAC)' 그룹을 필두로 정관계, 군부, 언론계 등 조야에 광범위하게 포진 한 강경 매파를 한편으로, 이들의 표적이 되고 있는 파월의 국무성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권력투쟁이 그것이다.
아프간 전쟁이 '너무 빨리(?)' 끝나면서 현재 파월측의 고립이 관찰되고 있다. 그러나 굳이 대 이라크 2차걸프전이나 소말리아 등으로의 확전이 아니더라도, 이 것만으로 미국이 거둔 실익은 엄청나다.
중앙아시아는 러시아로서는 뒷마당이요, 중국으로서는 뒷문에 해당된다.
그래서 중, 러 양국은 이 지역의 '공동지배'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상하이 협력기구(SCO)'를 설립하고, 또 이 기구하에 역내 이슬람 테러에 공동대응하기 위한 반테러 신속배치군을 창설하기로 지난 6월 합의한 바 있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모든 것이 바뀐다. 미국이 소련붕괴이후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우즈베키스탄이 전쟁 과정에서 군사기지와 시설을 미국에 제공하였고, 이제부터 미국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을 주둔시킬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거의 최초의 그리고 합법적인 자국 군대의 중앙아시아 진출에 다름 아니다. 이는 오랫동안 미국의 전략 디자이너들이 염원해 온 것이기도 하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중앙아시아의 가치는 막대하다. 미국은 이 번 전쟁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 전부를 도모할 안정적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아프간전쟁의 일차적인 정치적 목표는 최대 친미정권, 최소 비(非)반미정권의 수립에 있었다. 이제 그 최대치를 얻었다.
이로써 우즈베키스탄-아프간 축을 통해 위로는 러시아의 남진을 견제하고, 동으로는 중국을 압박하고, 남으로는 인도와 서남아시아를 포섭할 수 있게 되었다.
중동에서 미국의 지위는 유일적이며, 그 힘은 압도적이다. 이를 넘어 이제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9.11 이전까지의 중,러 공동헤게모니를 최소한 미,중,러 공동헤게모니로 대체하거나 경우에 따라 독보적인 수준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 중앙아시아가 세계정치적 지각변동의 진앙지로 뜨고 있다. 향후 중앙아시아는 미, 중, 러 헤게모니의 또 다른 각축장이 될 것이고, 여기에 복잡한 역내 민족분쟁이 가세한다면, 이 지역이 발칸과 중동에 이어 세계의 화약고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는 9.11테러 이후 우리 모두가 '위험한 세계'로 진입했다고 본다. 이는 비단 미국이 너무 강해 이를 견제할 힘의 중심이 없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적 리더십의 내용이다. 지금까지 세계사를 끌어온 대부분의 역사적 리더십은 모두 우월한 정신적 가치에 기반하고 있었고 또 그래서 '문명적'이었다.
'미국적 가치'는 과연 그러한가. 일방적인 질주에 기반한 리더십은 허전하고 또 위험하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 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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