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深천)에 갔을 때 시장 근처를 걸어가다가 도살한 개를 줄줄이 매달아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저녁 먹으러 가던 길이었는데, 그 끔찍함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지금도 선전을 생각하면 그 광경이 떠오르고, '야만적'이라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80년대에 서울에서 일하던 한 미국 여기자는 자주 지나다니는 청진동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눈을 감고 뛴다고 말했다.
그 지점에는 뱀탕 집이 있고, 유리병에 담긴 뱀들이 진열돼 있었다.
개고기 집, 뱀탕 집 등이 도심의 대로변에서 사라진 것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혐오식품'에 대한 시비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개고기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거셌다.
2002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개고기 시비가 일어난 것은 예상됐던 일이다.
한국에서 중요한 국제행사를 치룰 때마다 세계의 동물보호운동 단체들은 개고기 문제를 이슈화 했고, 서구의 신문 방송들은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여 센세이셔널한 보도를 해 왔다.
동물보호운동가인 프랑스의 영화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를 비난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번에 달라진 게 있다면 한국인들의 대응이 매우 자신만만하고 격렬하다는 것이다. 제프 블래터 세계축구연맹회장이 '개고기 식용문화 근절'을 촉구하자 "축구연맹이 무슨 권리로 남의 나라 음식문화에 간여하느냐"는 분노의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보신탕문화를 '야만'이라고 비난했던 브리지트 바르도는 "한국인들의 호전적인 e메일 협박을 받고 있다" 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나라마다 고유한 음식문화가 있는데 무슨 시비냐, 서구 우월주의다, 주권 간섭이다, 서양인들이 말고기먹는 건 괜찮으냐, 등등의 반발이 거세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구의 언론과 동물보호운동 단체가 한국의 개고기 문제를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라마다 고유한 음식문화가 있으니 간섭하지 말라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개고기 예찬론자나 '음식문화 주권론자'들이 잊고있는 한가지 사실은 보신탕에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이 한국인 중에도 많다는 점이다.
한국인도 얼굴 돌리는 개고기를 그처럼 공격적으로 방어한다면 '야만'이란 이미지가 더욱 강해질 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고기 식용에 대한 세계인들의 반대가 생명존중이라는 거슬릴 수 없는 큰 물결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생명존중 운동은 환경보호 운동과 더불어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운동이다. "한국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마다 개고기로 트집을 잡는다"고 과소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한국이 세계적인 행사를 치룰 만한 국가가 되었다면 세계에서 통용되는 가치에 좀더 민감해져야 한다.
개고기 식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개를 죽이는 온갖 잔인한 방법, 들놀이에 개를 안고 가서 잡아먹는 식의 야만적인 도살, 비위생적인 유통 등은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신탕을 즐겨 먹는 것이 현실이라면 도축과 유통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축산물 가공처리법에 개고기를 포함시키면 개고기 식용을 합법화했다는 비난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는 설득력이 없다.
서구의 여론은 개고기 식용 그 자체보다 '잔인한 도축'을 더 문제삼고 있고, 국내 여론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그처럼 참혹하게 개를 죽이는 나라에 살고있다는 것은 가슴 아프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나는 지금도 선전을 생각하면 빨래처럼 널려있던 도살된 개들이 떠오른다. 그 미국여기자는 서울을 생각하면 뱀탕 집 앞을 몸서리치며 눈감고 뛰던 생각이 날 것이다.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 식품을 큰소리치며 먹겠다는 생각은 버려야한다. 보신탕을 김치처럼 한국의 고유식품으로 세계화하자는 주장은 농담으로 듣기에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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