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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런 일] 89년 노새로 오른 '토라보라' 잠입취재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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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런 일] 89년 노새로 오른 '토라보라' 잠입취재 생생

입력
2001.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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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아프간 동부동맹의 협공 앞에 떨고 있는 탈레반의 '마지막 잎새' 토라보라.아프간 동북부의 험준한 이 곳 산악지역 남쪽에 인접한 지역이 팍티아주다.

1989년 1월 당시 퇴각 중이던 소련군과 아프간 무자헤딘(회교전사)간의 전투를 취재하기 위해 이 지역에 잠입했다.

필자와 파키스탄인 기자 2명, 그리고 일본 요미우리신문 기자 1명 등 4명은 파키스탄 북동변방주 주도 페샤와르에 파견돼 있던 무자헤딘 장교들에게 적지않은 액수의 사례비를 건넨 뒤 무자헤딘 복장으로 변장하고 아프간 잠행에 나섰다.

페샤와르를 떠나팍티아주의 '자지(Zaji)'라는 무자헤딘 캠프에 도착하기 까지 무려 17개소의 검문소를 거쳐야 했다.

차량이 검문소에 설 때마다 가슴 졸이던 순간과 한밤중 힌두쿠시 산맥의 눈길을 노새를 타고 기어오르던 기억들이 바로 어제인 듯하다.

발목이 짧은 노스캐롤라이나산 노새는 미국이 스팅어 미사일과 함께 무자헤딘측에 공급했던 가공할 군사 원조였다.

노새는 험준한 산악지역으로 물자나 식량을 운반하던 고산지대의 '퀵 서비스'였다.

한발짝이라도 길을 벗어나면 지뢰를 밟는다며 훈련소 조교처럼 혹독하게 굴던 페샤와르의 '프런티어 포스트' 기자 샤밈 샤히드.

허약 체질인 요미우리기자를 부축, 가파른 눈길을 오르던 AFP 사진기자 주바이르 미르의 이마에 흐르던 땀이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는 아프간 무자헤딘들과 함께 이틀 밤을 지내며 눈 덮힌 산골짜기 이곳 저곳에 흉측하게 나뒹굴던 소련 탱크와 헬기 잔해를 목격했다.

휴식중인 무자헤딘들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걸어두던 카라쉬니코프 소총들. 영국출신 여성 무자헤딘이자 작가인 자흐라 나시르는 이것을 '총나무'(Gun Tree)라고 불렀다.

그러나 당시 아프간의 전황을 현지에서 전하는 첫 기사는 '자지'라는 데이트라인(기사발신지)을 달지 못했다.

어감이 좋지않다는 이유로 서울 외신부(국제부) 동료들이 토론 끝에 데이트라인을 '즈아지'로 바꿔 달았기 때문이다.

당시인연 때문에 9ㆍ11 테러 직후 다시 페샤와르에 파견됐다. 12년이 지난 지금 샤밈기자는 더 네이션지의 지국장이었다.

사진기자 주바이르는 2년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샤밈은 주바이르가 생전에 찍은 2장을 내게 건넸다. 이슬람 법정에서 강간혐의자를 가죽 띠로 매질하는 장면이었다.

이번 취재에서도 샤밈의 도움은 컸다. 특히 내 뒤를 이어 파키스탄에 파견된 홍윤오기자는 탈레반의 카불 철수 직후 한국기자로는 처음 현지 취재에 성공했다.

하지만 두차례 아프간 취재가 모두 주마간산 격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난달 탈레반의 패배가 역력해지자 대부분 한국언론사가 재빨리 특파원을 철수시킨 점은 반성할 대목이다.

이상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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