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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21 / 이질적 서울 강남북 화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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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21 / 이질적 서울 강남북 화랑문화

입력
2001.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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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사비나.사진작가 신경철씨의 ‘하얀 풍경’전이 열리고 있다. 설경을 찍은 사진 20여 점이 걸렸는데 ‘포장’이 눈길을 끈다.

고풍스러운 창호 문 안에 사진이 들어 있어 마치 한옥 사랑방 안에서 창문으로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듯하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실험성이 돋보이는 전시장이다.

#2. 같은 날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

지하철 3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너 도착한 이 곳은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서양화가 장승택씨의 개인전인데 한마디로 미니멀리즘 계열의 작품이다.

마치 단순하고 소박한 벽지처럼 그림 속 형태와 색상이 증발한 작품 30여 점이 전시장 1, 2층을 메우고 있다. 깔끔하고 모던하다.

강 하나를 두고 서울의 강남과 강북 화랑가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사동과 관훈동 사간동 평창동을 중심으로 한 ‘강북 화랑’과 신사동 논현동 압구정동 청담동을 중심으로 한 ‘강남 화랑’이 작품의 장르, 선호작가, 전시회 성격 등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미 작가들 사이에서는 “내 작품은 강남(또는 강북)에서는 안 팔린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다. 올해 서울에서 열린 주요 전시회를 살펴보면 강남ㆍ북 화랑의 현주소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우선 강북은 전통 화법에 충실한 작품이 많이 선보였다. 구상 조각ㆍ판화ㆍ유화(노상균ㆍ갤러리 현대, 남궁산ㆍ학고재, 황용엽ㆍ선화랑), 색채화(이두식ㆍ노화랑), 동양화ㆍ수묵화(석철주ㆍ아트스페이스 서울, 유양옥ㆍ학고재) 등등.

젊은 작가들의 실험성 강한 설치작품이나 영상작품을 전시한 곳도 강북(사루비아다방, 가나아트센터)이다.

반면 강남 화랑가에서는 미니멀리즘과 단색회화(모노크롬) 계열의 작품, 추상성이 강한 유화 작품이 많이 걸렸다.

백색화면의 이강소(카이스 갤러리), 추상 한지 작업의 함 섭(박영덕화랑)과 정창섭(표 갤러리), 추상조각의 박용남(박여숙화랑), 서구 동화의 세계를 표현한 정 일(청작화랑) 등등.

패트릭 휴스(박여숙화랑), 제임스 브라운(줄리아나 갤러리) 등 외국작가 전시회가 주로 열린 곳도 강남이었다.

1981년 강남에 화랑을 차린 이숙영 예화랑 대표는 “심플한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강남지역에서는 40대 후반~50대 초반 작가의 깔끔하고 세련된 작품이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강북에서는 작고ㆍ원로 작가의 전통적이고 안정적인 작품과 젊은 작가의 실험성 강한 작품이 공존한다”는 것이 이명옥 갤러리 사비나 대표의 설명이다.

이러한 경향은 강남ㆍ북 화랑들이 선호하는 작가 면에서도 두드러진다.

물론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김환기 같은 ‘국민작가’와 고영훈 황창배 최영림 이왈종 이석주 지석철 김형근 황주리 김병종 등 ‘전국구 작가’는 예외지만 ‘강남 작가’와 ‘강북 작가’는 분명히 존재한다.

평론가와 화랑 관계자들에 따르면 강남 화랑에서는 이강소 함 섭 김종학 구자승 김일해 김창렬 김원숙 문 신, 강북 화랑에서는 황영성 서승원 조덕현 주태석 강경구 정종미 석철주 김선두 등이 인기가 있다.

평론가 김종근(홍익대 겸임교수)씨는 “강북은 작고ㆍ원로 작가나 아예 젊은 작가의 작품, 강남은 ‘브랜드’가 있는 유명작가의 작품이 많이 걸린다”며 “특히 강남에서 20, 30대 젊은 작가는 발표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강북에서 이들의 실험성 강한 작품이 자주 전시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역별로 미술애호가의 취향이 다른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강북에는 노년층의 컬렉터와 인사동을 오가는 젊은 유동인구가 많고, 강남에는 고소득에 서구적 조형물과 인테리어에 익숙한 30~40대 애호가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평론가 류석우(월간 ‘미술시대’ 주간)씨는 “강남에서는 ‘먹 그림만 보면 귀신이 나올것 같다’며 동양화나 수묵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강남에서 미니멀리즘이 인기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99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미술품 경매시장 1호점, 지난달 강남구 청담동에 2호점을 세운 김순응 ㈜서울옥션 대표이사는 “강남에서 장식성이 많고 가볍고 세련된 작품이 인기 있는 것은 주요 고객이 디자이너나 건축가 등 30~40대 전문직 종사자이기 때문”이라며 “반면 강북에는 오랜 경력의 컬렉터를 중심으로 작고ㆍ원로 작가의 비싼 작품이나 골동품이 잘 팔린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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