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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내수 거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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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내수 거품론

입력
2001.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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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외환위기이후 가장 힘들었던 올 한해 우리 경제는 가까스로 최소한의 성장을 유지하며 한해를 마감할 전망이다.올해 경제를 되돌아보면 과거 성장패턴과는 자못 다른 양상을 발견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성장을 이끌어왔던 수출과 투자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는데도 불구하고, 내수가 경기를 간신히 떠받쳐 플러스 성장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지난 3ㆍ4분기 성장률이 1.8%로 예상보다 높게 나온 까닭도 내수소비가 3.4% 증가한 탓이 크다.

이런 가운데 연말 들어서는 특별소비세 인하에 힘입어 자동차, 가전제품의 판매가 급증하고 백화점 세일은 지난해보다 10~30%씩 증가, 마치 호황에 접어든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생산, 투자가 모두 감소하는 경기하강 국면에서 유독 소비만 호조를 보이는 것은 분명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전체 국민소득은 감소 또는 정체하는 데도 소비는 오히려 늘어나는 모순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경기를 잊고 사는 고소득층의 소비열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의 반영 등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해답은 최대 호황을 구가하는 신용카드업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은행의 가계대출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나 범람하는 신용카드는 올해 내수증대의 1등공신이다. 올해 우리 국민들은 전체 인구 수의 두 배에 가까운 8,200만장의 신용카드를 호기있게 긁어대며 400조원 가까이 소비할 전망이다.

지난해 보다 배 이상 늘어난 액수이다. 한국의 신용카드 사용액은 경제규모가 10배나 큰 일본보다 많고 아시아 태평양 국가중 1위를 자랑한다고 하니가히 카드의 천국이라 할만하다.

당연히 신용카드사들은 돈벼락을 맞고 있다. 7개 전업카드사들은 상반기에만 1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챙겨 이익규모 줄이기에 골몰하는 상황이고 은행들은 전체수수료 수입의 73%를 넘어선 신용카드 수입에 힘입어 재무제표를 번듯하게 포장할 수 있게 됐다.

신용카드사용 증가는 신용사회로, 정보화사회로 가는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오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선물공세를 펴가며 무차별로 가입자를 유치하는 광경은 선진 신용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외국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신용카드 발급이 얼마나 까다롭고 엄격한지 너무 잘 안다.

남발되는 카드는 부실금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은행의 카드대금 연체율은 8.6%로 일반 대출의 연체율보다 5배나 높다.

만의 하나 경기라도 악화할 경우 신용위기를 촉발할 위험성을 안고 있는 시한폭탄이다.

가계대출의 폭발적 증가도 내수증가에 상당부분 기여하고 있다. 과거 일반은행의 대출금 중 10~20% 수준에 그치던 가계대출은 최근 40% 수준으로 늘어났다.

은행마다 기업대출은 내팽개치고 직원들에게 할당량까지 제시하며 가계대출을 독려하는 상황이다.

97년 외환위기는 대기업의 과도한 부채경영과 과잉투자로 빚어졌고, 은행들은 너도나도 기업대출에만 매달리며 자금을 댔다.

그 은행들이 이제는 대기업은 외면하고 개인들을 상대로 신용을 남발하고 있는 셈이다. 수익만 난다면 청탁을 가리지 않는 은행의 후진적 영업행태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부채불감증, 카드 때문에 늘어나는 세수로 즐거운 정부, 신용을 남발해서라도 당장 순익을 올리려는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가 얽혀 언제 터질지 모를 내수의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배정근경제부장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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