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총재와 대통령직을 분리키로 한 여야의 결정은 기존 제왕적 대통령제, 1인 보스 체제의 폐해를 없애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게 확실하다.과거는 물론이고 현 민주당까지도 대통령이 총재를 겸한 데서 비롯된 정치적 적폐는 적지 않았다. 우선 집권당이 대통령의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집권당의 국회 대책이 사실상 청와대의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돼 “국회에 정치는 없고 거수기만 있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대야 관계도 당이 아닌 청와대가 주도함으로써 집권당의 무력화, 자생력 약화 등의 문제점을 낳았다.
절대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총재로서 주요 당무를 챙기는 여당의 의사결정 구조는 당내 민주화를 가로막는 결정적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특히 대통령 겸 총재에게 공천권은 국회의원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가장 큰 무기였다.
‘당정 일치’는 수시로 당정 갈등을 낳아 여권 내부의 파워게임과 이로 인한 국정 혼란 등의 부작용을 불러 왔다.
특정 인맥 시비, 정부 관료들의 정치권 줄대기 현상 등도 따지고 보면 대통령의 여당 총재직 겸임이 문제의 출발점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따라서 여야의 당정 분리 방침은 정당정치 복원과 국회의 위상 제고, 당내 민주화 촉진 등의 순기능을 불러올 소지가 충분하다.
물론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당정이 분리됨으로써 정부의 입법 추진력이 약해져 정책 수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이 대표적인 예.
또 정국을 주도하는 중심세력의 개념이 희박해져 여야간 대치가 심화할 경우 정치가 장기간 표류하는 경우도 예상된다.
그러나 “제도 변경과 함께 여야 정치인들의 의식까지 바뀔 경우 우리 정치판은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을 기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견해가 우세하다.
특히 “여야 어느 쪽에서 나오든 차기 대통령 자신이 당을 정치의 중심으로 인정하고 본인은 병풍, 후원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여론에 순응한 野
그 동안 찬ㆍ반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11일 대권ㆍ당권 분리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총재는 이날 국가혁신위의 보고를 받고, 분리론을 받아 들이기로 결정했다. 다만 이 총재측은 집권후 당의 총체적인 쇄신과 대통령의 당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 행사를 위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용배경 이 총재는 당권ㆍ대권 분리에 미온적이었다. 최병렬(崔秉烈) 이부영(李富榮)박근혜(朴槿惠) 부총재, 김덕룡(金德龍) 의원 등이 공개적으로 주장했지만, 측근들 사이에서는 ‘분리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임기 초반에는 대통령에 힘이 실려야 한다”는 게 측근들의 주장이었고, 이 총재 또한 여기에 공감을 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당 쇄신의 방안으로 분리론을 내세우면서국민여론을 선점한 데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갈수록 커졌다.
이 총재로서는 이 같은 흐름을 마냥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이 총재측은 ‘결단’의 모양새를 만들고자 시기와 방법을 저울질했지만, 김용환(金龍煥) 국가혁신위원장의 보고 내용이 미리 알려지는 바람에 ‘떠밀려서 받아들이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구체적내용 이 총재는 물론이고, 최병렬 부총재와 김덕룡 의원은 대통령과 당 총재의 분리쪽이다.
최 부총재는 “대통령 후보가 총재로서 당을 장악, 선거를 치르는 것은 상식”이라며 “대통령이 된 후에 총재직을 내놓는 것이 어려울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당헌 등에 규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 의원측도 “뉴밀레니엄위원회의 결정은 대통령과 당 총재의 분리였다”고 확인했다.
반면 박근혜 이부영 부총재 등은 대선 후보와 총재직의 분리를 주장한다. 이 부총재는 “대통령이 된 후 생각이 바뀔 위험성을 차단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박 부총재는 이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대선 후보로 뽑히면 당권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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