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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神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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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神의 영역

입력
2001.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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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의 보탱(Botin)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돼 기네스북에 오른 레스토랑으로 유명하다. 1725년 식당 문을 열었으니 연륜이 276년에 달했다. 빛 바랜 석조건물의 지하 동굴을 자연 그대로 살려 테이블을 놓은 유서 깊은 분위기가 일품이다.당연히 이곳은 마드리드를 찾는 국제적인 명사들의 필수 방문코스로 되어있다. 과거 헤밍웨이는 이 식당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의 소설 '해는 또다시 뜬다'에 등장시켰을 정도다.

■보탱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명물은 '코치니요'다.

내장을 들어낸 어린 새끼 돼지를 통째로 화덕에 넣어 구은 요리다. 코치니요를 주문한 손님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자신이 먹을 돼지, 다시 말해 복부가 길고 깊게 십자 형태로 갈라져 죽어 있는 통돼지를 웨이터가 들고 오면, 그것을 그윽한 눈빛으로 환영해 주어야하는 것이다.

모든 손님이 이를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섬뜩하게 느껴질 광경이기도 한 것이다.

■최근 이것을 현장경험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배가 쩍 갈라진 새끼 돼지를 보면서 아마도 '원더풀'을 연발했을지도 모를 서양의 미식가들과 한국고유의 식문화에 대한 서양의 손가락질이 일순간 오버래핑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유럽의 한국 공관원들에게서 월드컵을 앞둔 보신탕 비난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던 터다.

대사관앞에서 보신탕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한국아이들이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고 있다 한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머리가 셋 달린 개가 그려진 고대 그리스시대 항아리를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물리쳤다는 지옥의 문지기 '케로베로스'다. 그리스인들은 왜 하필 개를 악의 수문장으로 표현했을까.

태초의 문학들은 모든 가축을 '신의 선물'로서 찬양하고 있다. 인간 만이 만류의 영장이고,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뜻일 게다.

인간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소나 돼지는 이렇게 항의할지도 모른다. "왜 동물차별을 하느냐"고 말이다.

오직 신만이 판정 권한을 갖고 있다.

송태권 논설위원

songt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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