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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라이프 / 망가지는 망년회 그만!실속있게… 보람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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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라이프 / 망가지는 망년회 그만!실속있게… 보람차게…

입력
2001.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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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버랜드 안창원(36) 홍보과장은 요즘 직장 업무가 끝나면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서투른 솜씨로 마술부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 오는 21일 서울 남산보육원을 찾아 어린이 원생들에게 마술 공연을 보여줄 예정이다.삼성에버랜드는 해마다 보육시설, 양로원 등을 찾아 자원봉사망년회를 펼쳐왔고 안팀장은 이 행사에 빠지지 않는 핵심 멤버. 그는 “자원봉사를 마치고 밤늦게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면 좋은 일을 했다는 보람으로 가슴이 뿌듯하다”면서 “실없는 농담이나 하고 시비 걸고 말꼬리잡고 늘어지는 폭탄주 망년회보다 백배 낫다”고 말했다.

연말 송년회를 차분하고 실속있게 보내려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호텔 연회장과 룸살롱은 술자리로 불야성을 이루고 자정이면 거리에는 취객들의 귀가행렬이 도심의 밤풍경을 장식했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독특한 송년회 문화때문. 꼭 이렇게 ‘망가지는’ 송년회를 치러야 새해가 밝는걸까? 예년의 송년회 문화에 대한 이 같은 반성과 함께 차분하고 실속있는 연말 송년회가 늘고 있다. 이런 송년회는 예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올해에는 숫자도 늘고 유형도 다양해졌다.

■이웃돕기 망년회

라이코스코리아 임직원들은 오는 26일께 서초동 사옥에서 자선바자회를 여는 것으로 망년회를 대신하기로 했다. 직원들이 물품을 가져와 저렴한 가격에 교환하고 수익금은 인근 교회에 기탁한다. 바자회가 끝나면 직원들은 본부별로 모여 조촐하게 심야 맥주파티를 가질 예정.

삼성SDS 임직원들은 오는 19일 사옥 지하에서 불우이웃돕기 송년회를 갖는다. 개그맨 박준형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날 송년회에는 사전에 쿠퐁을 구입한 직원들이 참석하게 된다.

쿠퐁 판매로 얻은 수익금은 강남구 관내 독거노인에게 기탁한다.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끝나면 직원들끼리 근처 심야 커피숍에서 한해를 결산하는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자영업자 양옥석(31)씨는 지난 9일 서울 강남의 삼겹살집에서 열린 대학동창 망년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다. 특급호텔에서 마시고 2, 3차까지 질펀한 술자리로 이어졌던 예년의 망년회에서 탈피한 것. “폭탄주 망년회로 예상했던 비용 200만원 가량을 불우이웃돕기에 기탁하기로 했다”는 동창회장의 설명에 참석자들은 박수를 쳤다.

이색 망년회 20, 30대 젊은 연령층이 많은 벤처업체 직원들은 스키ㆍ여행ㆍ찜질방 망년회 같은 이색 망년회를 준비하고 있다. 알파엔지니어링에 다니는 최현정(27ㆍ여)씨는 지난 주말 백화점에 들러 스키 장비를 구입했다.

동료들과 망년회를 안건으로 회의를 열어 오는 28일 1박2일 일정으로 보광휘닉스파크에서 스키 망년회를 갖기로 했기때문이다. 최씨는 “오랜만에 야간 스키를 즐기면서 그간 업무에 몰두하느라 소홀했던 건강을 다지고 스트레스를 풀 생각“이라며 “폭탄주 망년회를 걱정하던 부모님이 크게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킹엔닷컴 임직원들은 31일 강릉 정동진에서 무박2일 일정으로 일출 망년회를 갖는다. 김태호(29) 팀장은 “바닷가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한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기약하자는 취지로 직원들이 결정한 것”이라며 “일출을 보고 나서 묵은 때를 없앤다는 의미에서 단체 사우나를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에브리존 임직원들은 21일 업무가 끝난 후 서울의 한 찜질방에서 찜질방 망년회를 갖는다. 에브리존은 지난해에도 불가마 찜질방에 들러 쌓아둔 얘기꽃을 피우고 시원한 생맥주 한잔으로 망년회를 마무리했다.

라이코스스테이션TIC 임직원들은 21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영화 감상 망년회를 갖기로 하고 영화 티켓을 단체 예약했다. 이 업체는 이날 극장에서 ‘해리포터’를 단체 감상하고 나서 송파구 신천동의 자사 PC방체인점에서 게임대회를 갖는 것으로 폭탄주 망년회를 대신한다.

■폭탄주는 이제 그만

직장인들이 술마시는 송년회를 기피하는 경향은 송년문화행사에 예약이 몰리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세종문화회관이 음악회 관람과 동해 해맞이 감상을 패키지로 만든 송년회 티켓은 장당 12만원임에도 매진 사례를 빚었다.

이 티켓을 구입하면 31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이소정, 장사익, 해바라기가 등장하는 공연을 관람하고 밤차로 떠나 1월 1일 새벽에 강릉 경포대에서 새해의 떠오르는 해를 감상할 수 있다.

삼성SDS 홍보팀에 근무하는 김혜진(29ㆍ여)씨는 대학동창(이화여대 경영학과91학번)들과 송년회를 음악회 관람으로 대신하기로 뜻을 모으고 31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조수미 콘서트 티켓을 단체 예약했다.

그는 지난해에도 술로 찌든 망년회를 물리치고 송년음악회를 감상하며 신년 계획을 구상했다. 음악회가 끝나고 나서는 남산에 올라 서울 야경을 감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폭탄주로 몸 망가지지 않고 차분하게 신년 계획을 구상할 수 있으니 10만원짜리 티켓이 아깝지 않아요.”

프라자호텔에 다니는 노은정(25ㆍ여)씨는 “남자 직원들끼리 폭언과 주먹다짐을 벌이기 십상인 연말 폭탄주 망년회가 공포 그 자체였다”면서 “마음에 맞는 동료들끼리 가볍게 한잔하고 헤어지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같아 반갑다”고 말했다. 노씨는 올해 망년회를 인근 북창동 갈비집에서 동료들끼리 조촐하게 가질 계획.

김현수 사는기쁨 정신과의원장은 “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야만 서로가 감정을 털어놓는 것은 역설적으로 조직이 경직돼 있다는 증거”라면서 “사회가 다양화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망년회가 차분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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