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가 승산없는 싸움에 나설 까닭이 없지요. 내년 슈퍼리그 때 삼성화재를 반드시 꺾고 우승하겠습니다.”20년간 이끌어 오던 한양대를 박차고 현대캐피탈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 송만덕(55)감독의 목소리는 다소 격앙되어 있었다. 그가 안정된 대학감독을 마다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유는 시들어 가는 배구판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7일 현대캐피탈로부터 감독직 제의를 받자마자 8일 전격 승락했다는 사실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최태웅 손석범 이인구 등 현 실업팀의 간판 스타들을 이끌고 구기종목 최다인 64연승(95∼98년) 신화를 일궈낸 그는 ‘화초론’을 곧잘 들먹인다.
“아름다운 꽃이라도 가꾸지 않으면 잡초가 된다. 반대로 잡초라도 가꾸면 볼만 하다”는 게 그의 배구철학이다. 선수를 가르치는데 그치지않고 사생활을 체크하고 희망을 심어주는 등 관리를 잘 해야 훌륭한 지도자가 된다는 말이다. 현대가 최고대우를 약속하며 마지막 카드로 그를 선택한것도 이 같은 지도스타일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팬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송감독의 현대행은 여러모로 관심을 끈다. 첫째는그가 한양대 감독시절 배구붐을 일으키며 숱한 스타들을 배출해 냈다는 점. 따라서 침체가 빠진 실업배구가 그의 주도로 다시 판이 커지고 붐을 탈것이란 기대가 크다.
또 다른 이유는 거포 이경수(한양대4)의 거취문제. 그는 “이경수 영입을 전제 조건으로 (나를 감독으로) 선임했다면 옮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4년간 조련해온 이경수를 그냥 놔둘 것이라고 믿는 배구인들은 드물다.
대전 중앙중 3년때 이경수를 점찍은 뒤꾸준히 관리해 오다 중앙고 졸업반일 때 감독과 부모를 설득해 스카우트에 성공한 송감독은 “당시 이경수 스카우트에나선 실업감독들이 실패한 것은 누가 키를 쥐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라며 “경수 아버지 이재환씨가 사주를 보더니 경수와 잘 맞겠다며 최종 승락했다”고스카우트 비결을 공개했다. 그는 “경수 아버지와 자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며이경수 스카우트에 대한 기대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송감독은 지금의 현대캐피탈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근성과 집중력이 너무 해이해졌습니다. 송인석 한명정도 마음에 들뿐 나머지 선수들은 부상에다 매너리즘에 빠졌어요.” 송감독은 “정신력 강화 훈련부터 시키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선수는 과감히 도태시키겠다”며 일대 바람을 예고했다. 송감독은 “삼성화재가 연승한 이유는 삼성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작 더 큰 이유는 삼성의 독주를 막기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은 다른 팀에 있다”면서 “강한훈련을 통해 현대를 완전히 다른 색깔의 팀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훈련을 강하게 시키는 것으로 졍평이난 명지대 유중탁(41)감독을 수석코치로 불러들여 벌써부터 현대선수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송감독은 보기와 달리 매를 잘 들지 않는다. 선수단이 지시에 따르지 안들을 때가장 잘하는 고참 한명을 골라 때린다. 주 희생자가 김세진(삼성화재)이었다. 또 신입생에게는 바뀐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까봐 심부름을 시키지않을 만큼 사려도 깊다.
하지만 대학지도 스타일이 실업에서도 통할까. “실업이 오히려 편해요. 대학 선수들은 도망갔다가 돌아와도 용서가 되지만 실업은 해고하면 끝입니다.” 그는 “일단 자신감을 심어주면 나머지는 선수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기대했다. 송감독은 “대학후배인 강만수 감독을 밀어내는 것 같아 처음에는 현대행을 망설였다”면서“하지만 배구판을 일으켜 세워야 겠기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덧붙였다.
이범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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