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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한일교류좌담회-2 /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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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한일교류좌담회-2 / 대중문화 교류의 현황과 과제

입력
2001.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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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좌장으로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지금 말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아시아는 무조건 카피를 해 왔는데 일본과 한국의문화교류 혹은 접촉에 의해 아시아는 수신자에서 발신자의 입장으로 돌아서게 됐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진 변화입니다. 특히 중국 대만의 경우를 보면 서양은 대단히 멀고, 한국과 일본은 문화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입니다. 극히 최근의 일이지만,일본과 한국의 한류가 눈에 띄게달라졌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 아까 노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를 일본어로 불러도 잘 맞는다는 지적은바로 그대로입니다. 영어에 비해 일본어와 한국어는 깁니다. 특히 일본어는 좀더 깁니다. 전세계의 언어에서 ‘나’는 한 음절로 돼 있습니다. 한국어로 ‘나’ 영어로 ‘I’로 쓰는데 일본만 ‘와타쿠시’ 네 음절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잘 안됩니다. 1시간30분 걸릴 셰익스피어 연극이 3시간은걸리거든요. 그래서 연극시간에 맞추는 ‘빠른 대사’라는 것도 생겨났습니다. 이래서는 감동을 줄 수 없지요. 일본의 ‘주신구라(忠臣藏)’를 한국어로 하고, 춘향전을 일본말로 하면 거의 속도가 같을 것입니다. 자막 번역을 할 때 일본 작품과 한국작품은 거의 속도가같으나, 영어는 한국어로 할 때 반도 자막으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 양국의 작품에는 친근감이 있습니다.언어를 봅시다. 평소에 말을 더듬더라도 음악을 하며 말을 더듬는 사람은없습니다. 음악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피카추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피카추가 무엇인지 그 의미도 잘 모릅니다. 그것은 의성어인데 ‘피카피카’와 ‘추우추우’로 돼 있습니다. 일종의 ‘전기 쥐’를 의성어로 나타낸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의성어에 대한 언어감각은 서양사람보다 한국인에게훨씬 가깝게 다가옵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번역할 때 영국 독일 프랑스의 경우는6개 7개정도의 의성어가 나오지만 일본은 무려 46개가 등장한다고 합니다. 한국어로옮기면 그보다 더 많아질 것입니다.아시아의 정체성 가운데 가장 기반이강한 것이 노래나 영상이고 언어가 가장 통하기 힘듭니다.하지만 일본어와 한국어는 중국어보다앞에서 말한대로 어순을 비롯해 그 공통점이 많습니다.이 언어의 장벽을 넘지 않고서는대중문화의 교류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한 가지 예로 ‘쉬리’가 일본에서 상영될 때 음악이나 영상에는 변화가 없지만언어를 번역한 자막에서는 원전과 많은 차이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일본영화의‘철도원’이나 ‘러브 레터’의 번역이 어느 정도 제대로 됐는지 따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미묘한 언어의 뉘앙스는 말할 것도 없고 뜻조차 제대로왜곡된 것이 많을 것으로 압니다.그래서 스토리 자체가 달리 전달되는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중국에서 갑자기 수요가 늘자 한국의 TV극이나 영화가 오투성이로 내용을 많이 훼손하고 있다고 합니다. 긴 안목으로 보면 언어가 뒷받침되지 않은 아시아의 문화교류는허상으로 그치기 쉽습니다.

△우메하라=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힌트를 받았습니다. 이어령 선생이 말했듯이 글로벌리즘이라는 현재의 세계적 풍조는미국적인 것을 세계문화로 한다는 풍조입니다.그것에 대한 여러 가지 저항이 발생하고있지만 적어도 문화적 글로벌리즘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아시아에서는 아시아적 문화를 갖고, 확인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조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시아에 있어서 아직 유럽의 획일문명이라는아주 강렬한 문명의 영향을 받아 창조적인 요소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소감입니다. 일본에서는 자연과학에 창조적인 모습이 있었지만, 다른 분야는 유럽문화의 카피였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예술면에서 전세계를 풍미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영상문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의 영화와, 데츠카 오사무(手塚治)의 애니메이션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세계에 충격을 준 예술가들은 유감스럽게도 소설가도, 화가도 아닙니다. 방금 이야기했듯 눈과 입에 속하는 문화에 대해 서양에 지지않는 것을 지금에야 만들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카피문화가 아닌 독자적 문화를 창조해 나가야 합니다. 일한중 3개국이 서로 자극을주며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사와 도모에씨가 이야기한 것 중에참고가 되는 것은 일본청중의 자세에 대한 묘사입니다.노래를 부르면 일본청중은 옆 사람을쳐다봅니다. 옆 사람이 칭찬하면 박수치고, 아무 말 없으면 가만히 있습니다. 매스미디어도 똑같습니다. 어떤 것을 칭찬하는데 옆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따라 합니다. 그러한 경향이 일본인에게 강합니다. 이에 반해 한국인은 아주 확실합니다. 일본의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라는 위대한 불교학자가 80대에 접어들어 “노예의 학문을 그만두어라”라고 외쳤지만, 그 말을 30대에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후에 열심히 연마를 해서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한국인은 확실하게 주장을 합니다. 그것이 서로 열 받기 쉽고, 싸움에 이르는 경우도 있지만, 일본의 그런 애매한 태도는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들은 토론회에서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옆 사람의 얼굴색을 보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종의 노예근성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면서 아시아의 정체성에 대해토의하고, 진정한 아시아문화를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구로사와의 열렬한 팬이지만, 최근 한국의 영화에 대한 실정은 모릅니다. 그 부분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요모타=10년쯤 전에 호주의 한 대학에서 ‘아시아에 있어서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호주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아시아의여러 나라에서 학자들이 참석했습니다.그 때 이야기가 됐던 것이, 예를 들어ㄹㄴ 앤디 워홀, 스필버그는 알고 있지만 동양의 안성기를 아는 사람은 일본과한국인뿐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동양의 다른 스타들에 대한 각국의반응도 비슷했습니다. 동양 사람들이 동양의 스타 모두를 아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스필버그나 앤디 워홀은 알고 있는데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것은 예술문화에 대한 정보의 불균형 때문입니다.그런 정보들이 모두 미국을 향하고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한국과 방콕의 참가자와 공통적으로 나눌수 있는 주제는 스필버그 밖에 없었습니다.그같은 억울함 같은 것을 통감했습니다. 나와 한국인은 안성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인도네시아사람은 “안성기가 누구냐?”는 반응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런 것을 시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 10년 전이었으나, 지금은 한국ㆍ일본영화가 국제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예를 들어 ‘쉬리’라는 영화는 국제영화제를 통해 아시아의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白南準)은 이미 세계적인 명사로 알려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점차 그런 식으로나마 아시아지역에 있어서의 정보 불균형현상이시정돼 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런 의미에서 문화의 세계화에 대해우리들은 작지만 나름대로 개별적인 작업을 하고,서로 협력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지금부터라도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소설가 이호철(李浩哲) 선생이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ㆍ1899~1972ㆍ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소설을 번역했을 때 사람들은 소설을 통해 일본인의 연애관, 생활모습 등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 ‘상실의 시대’ 등을 그런 식으로 읽지 않습니다. 20대 청년이 일본소설이기 때문에 읽는다는 발상은 어울리지않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가 아름다운 소설을 썼다, 그래서 그 소설을 읽는 것입니다. 일본이라서 읽는 게 아니라 소설이 좋기 때문에 읽는 것이다, 읽고 보니 일본소설이었다는 식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대단히 좋은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파리에서 이문열(李文烈)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인도 한국의 소설이기 때문에 읽는 것은 아닙니다. 이문열이 소년시절의 굴육을 그렇게 생생하게 묘사한 소설이란형식으로 읽은 후, “그런데 이 사람이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아 한국인!”이라는 식으로 소설을 읽기 마련입니다. 소설 자체의 강렬함에서 이문열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예술가들이 국적이라든지 다른 부수적인것들로부터 떨어져 개인으로서 받아들여지고,그 후에 국적을 인식하는 경향이아시아에서 조금씩 나타나는 것을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약간 보수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또 다른 걱정도 하게 됩니다. 예를들어 내 학생들이 ‘쉬리’나 ‘JSA’라는 한국영화를 보고 재미있는 영화구나, 액션이 끝내준다고 이야기합니다. 배우들의 남자다운 모습, 근육질적인 모습은 일본 남자배우들에게는 없는 것이라고 일본여자들이 감탄합니다. 내 친구는 “총을 든 포즈가 무조건 멋있다, 일본인들은 총을 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에서도그렇게 멋지게 총을 쏘지 못해,액션이 멋있다”고 칭찬합니다. ‘JSA’도 대히트를 했습니다.

그러나그런 식으로만 해서 괜찮겠는가 하는 기분이 듭니다.앞의 이야기와 모순될 수도 있겠지만‘쉬리’는 역시 한국의 역사의식 속에서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작품입니다. 나의 학생들은 “어쨌든 재미있다. 이런 액션은 홍콩영화나 할리우드에서도 나오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영화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좀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예를 들어 한국 남북분단의 현실등등을 알지 못하면 영화의 구조라고 하는 세밀한 것들을 알기 어렵지 않겠는가, 그런 식으로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락영화라고 한 마디로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그 배경에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커다란 사건과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 만들기가 가능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식으로 이야기합니다. 나는 쉬리의 여주인공이 남한에 처음으로 침투해 침대 사용법을몰라 잠잘 때 항상 침대 밑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를 할 때,내가 체득한 평양 등 북한의 경험을떠올리며 그 대사가 정말로 마음 속 깊이 울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본의100만 명 이상의 젊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세밀한부분에 나타나는 감독과 시나리오작가의 마음을 이해한다면,영화의 깊은 구조를 한층 더 잘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나는 지금 모순된 이야기를 두 가지 했지만 이 두 가지면을 잊으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이 두 가지를 무시하면 주위 나라의, 혹은 아시아 속의 문화라고 하는 것을 문학작품, 예술작품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어령=대중문화에 있어서는 언어적 사고보다는 영상적 사고가 앞섭니다. 쉬리가 성공한 것은 남북문제의 분단과 같은 이념이나 어떤강력한 메시지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에서 히트를 했다기보다 쉬리라는 물고기와 수조의 이미지, 그리고 다이나믹한 액션과 같은 영상적 참신성이 어필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금 한국의 대중문화는 종래의 관념적이고 메시지 중심의상투성이나 그러한 대중예술예서 많이 탈피하고 잇습니다.고다르와 같은 프랑스감독이 유명한말을 했습니다. “쿠바혁명이 성공하려면 학생들에게 펜이 아니라 카메라를 주는 교육의 혁명이 있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서구문화의 로고스 중심주의의 오염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지요.

고급문화는 대체로 언어-문자 중심의 문화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인터넷과 같은 토털 디지털 미디어의 문화가 대두되면서지금까지 분열되어 있던 영상과 관념,그리고 시각과 청각등의 괴리등이점차 통합적인 방향으로 전화하고 있습니다.언어의 한계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만고급문화와 달리 대중문화의 힘을 통해서,그리고 디지털문화의 환경변화에 의해서언어의 벽을 넘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앞으로 관심거리입니다.

수억의 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은 일본의 포켓몬스터가 그것을암시해주는 지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면서도 동시에 포켓몬은 언어성처럼대단히 일본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20년 전 내가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지적한 것처럼 포켓몬은 일본적 언어를 비언어적 수단에의해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풀이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아이들을 사로잡은 허구적 세계의 괴물들은 모두가 거대합니다. 스필버그가만든 공룡을 비롯해 역대 히트작들은 킹콩 신드바트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러나포켓몬은 말 그대로 주머니 속에 들어가는 작은 괴물 몬스터들입니다. 축소지향적사고의 산물입니다. 자기를 압도하던 괴물을 생각하던 전세계의 아이들이 호주머니에넣고 다닐 수 있는 괴력을 가진 포켓몬을 기르는 재미를 맛보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포켓몬의 세계는 식물과 동물의 구별조차 없는 융합ㆍ변환의 가상공간인 것입니다. 이항대립체계의 서양과는 다른 아시아의 문화적 성격을 예감시키는것들이지요. 이런 데서 아시아의 대중문화의 새 비전을 찾아볼 수가 있지요.

■한류열풍 확산

1996년 한국드라마 수출을 계기로 중국 대만등지에 일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붐을 한류(韓流)라고 부른다. 1998년 가요 진출이 본격화한 이후에는 홍콩 베트남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일대까지 영향권이 확대되고있다.

한류의 주역은 중국 대만에서 시청률이 높았던 트렌디 드라마의 주인공과 역동적인 춤과 화려한 비주얼을 앞세운 가수들로, 탤런트 안재욱, 차인표, 송혜교, 송승헌, 채림, 김남주, 이영애와 댄스 그룹 H.O.T, NRG, 베이비복스, S.E.S, 신화 등을 들 수 있다.

대만에서는 한국 연예인과 드라마 촬영장소를 방문하는 ‘스타관광’을 판매하는 여행사 80여 곳이 성업중이며 송혜교 이영애 김남주 등의 얼굴을 본딴 성형수술이 붐을 이루고 있다. 중국에는 한국제품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을 일컫는 ‘하한쭈(哈韓族)’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한류열풍으로 우리 드라마의 수출액은 2000년말 1,30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올해는1,800만 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정리=김철훈기자

유성식기자

황상진기자

■참석자

이어령(李御寧)전 문화부 장관

이영혜(李英惠) 디자인 하우스 대표

강제규(姜帝圭) 영화감독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 철학자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犬彦) 메이지학원대교수

사와 도모에(澤 知惠)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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