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본선 조 추첨식이 1일 열려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조였다.대진운이 지지리도 나빠 이제 정말 우리의 실력밖에 기댈 곳이 없어졌다.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화원의 부케보다는 가시밭길에 핀 한떨기 장미가 더 찬란하지 않은가. 아마 우리 선수들은 축구화의 끈을 다시 한번 질끈 조여맸을 것이다.
"어느 팀도 겁나지 않는다. 같은 의미에서 어느 팀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히딩크 감독의 말이 당차다.
월드컵은 경기(game)이다. 경기는 골(goal)이다. 골은 공이고, 공은 둥글다. 어느 정도는 분명 운(運)이 도사려 있는 것이다.
여기에 홈그라운드의 이점도 작용하고,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그날의 날씨도 변수가 될 수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경기엔 또 상대가 있다. 골 수만큼 분명하게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그건 슛을 날린 속도만큼 순간에 결정되며 두 눈에 보이는 확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은 결코 영원한 것은 아니다. 승자의 환호나 패자의 눈물이 4년후 뒤바뀔 수도 있다.
단지 기록으로 남을 뿐이며, 그 당시의 국가적 자긍심과 통쾌함 외에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또 이겼다고 해서 돈이 되는것도 아니다. 월드컵 스타의 개인적 몸값만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영원히 남는 것이 있다. 스코어는 잊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라운드가 아니라 장외(場外)의 것이다. 바로 국가 이미지이다. 숫자는 금세 잊혀져도 경기가 열렸던 나라와 도시와 사람들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 나라 고유의 문화와 음식 맛과 풍경은 평생 기억 속에 남아있다. 바로 문화의 힘이다.
문화월드컵의 총예산은 459억 원이다. 개막식 문화행사비가 105억 원, 개막전야제 비용이 110억 원, 조 추첨 문화행사비가 47억 원, 각 개최 도시 별로 10억 원 정도 지원, 기타 사업비 등으로 97억 원이 책정됐다고 했다.
경기장의 건설 비용을 훑어 보았다. 10개 경기장 건설에 1조 9,503억 원이 들었다. 한 경기장에 평균 1,950억 원 꼴이다. 경기장 하나를 짓는 데 들어가는 돈이 이른바 '문화월드컵' 전체 비용의 네 배가 넘는다.
물론 문화라는 것이 돈을 들인다고 갑자기 꽃이 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화적 상상력은 돈으로 계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월드컵이 어차피 이벤트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볼 때 문화비가 적어도 너무나 적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 대표팀이 16강에 오를지, 오르지 못할지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설령 진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겠지만 그것 역시 순간의 환호일 뿐이다.
그러나 경기엔 져도 이길 수 있는 것, 승패보다 잊혀지지 않는 것, 과실(果實)이 영원한 것, 운이 결코 작용할 수 없는 것, 상대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대회를 기약할 수 없는, 만회가 불가능한 것, 그것은 바로 월드컵 기간 동안 보여 줄 수 있는 문화의 힘이다.
생산유발 효과와 부가가치 증대 효과가 16조 원이며 연인원 420억 명이 시청한다는 월드컵에서 진정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한기봉 문화과학부부장
kib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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