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든 한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크게 부족함없는 연말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스럽다.그러나 그런 조그만 안식조차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다행한 처지를 고마워만 하지 말고 이웃에게도 내가 누리는 행복을 나누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땅에는 헐벗고 굶주린 채 심신의 병고에 신음하면서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을 돕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요 도리이다.
헐벗고 굶주렸던 우리의 옛 시절을 돌아보거나 해마다 빈곤과 질병으로 수백만 명씩 죽어 가는 다른 나라의 사정을 생각한다면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경제수준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내 것을 이웃과 나누어 갖는 데 이르면 우리의 실정은 참으로 부끄럽다.
작년 한 해 동안 종교관련행위를 제외하면 성인의 33%만이 자선금을 냈으며 한 해 동안 낸 1인당 기부금도 2만4,000원에 불과했다.
이는 1인당 소득의 0.2%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소득의 3% 정도를 자선행위에 쓰는 선진국과 견줄 수도 없을 만큼 낮은 수준이다.
올해는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연말에 몰리게 마련인 자선행위의 빈도나 자선금의 크기가 크게 줄어들 전망이어서 소년소녀가장, 고아원, 양로원, 무의탁 독거노인, 심신장애자, 난치병환자 등이 작년보다 더 추운 겨울을 나야 할 형편이다.
어렵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나누어 갖기를 기대해 본다.
국민의 10% 정도가 새로 자선행위에 참여하고 모든 기부자가 10%씩만 더 낸다면 기부금 총액은 지금보다 무려 30%나 늘어나게 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내 것을 남과 나누어 가져야 하는가?
첫째, 나눔이 주는 기쁨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누는 행위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것으로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둘째, 내가 지닌 것 중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만 이룬 것은 얼마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가 내게 베푼 바를 계산에 넣으면 소득의 적어도 25%는 남의 도움으로 이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세금으로 내는 22%를 감안하더라도 소득의 3%까지는 이웃사랑에 써야 도리에 맞는다.
셋째, 이웃에 대한 사랑이 진정한 자유사회를 이루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언뜻 보아 지나칠 정도로 이기심이 지배하는 것 같은 선진사회를 지키는 버팀목이 넘쳐나는 봉사와 자선활동에 있음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나누는 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령 우리가 올해의 남은 기간 동안 세끼만 굶는다면 누구나 1만원정도는 헌금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각계의 지도층 인사들은 연말회식, 술자리, 골프모임, 여행 중 한가지만 줄이더라도 각자가 적어도 10만원은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웃과의 나눔에 있어서는 종교기관이 특히 앞장서야 한다. 자선행위자의 55%가 종교기관에 헌금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매년 교회와 사찰에서 거두는 헌금액이 수천억원에 이름을 알 수 있다.
그중 얼마만큼이 이웃돕기에 쓰이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사찰과 교회당을 크고 호화롭게 꾸미는 일을 줄이고 승려와 사제들이 본래의 청빈함으로 되돌아간다면 이웃돕기가 그만큼 더 활발해질 것이다.
나누는 일에서 언론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자선행위자의 38%가 언론기관을 통해 기부금을 내는 것으로 조사된 것을 보면 기부금 모금과 전달에 있어 그들이 받는 신뢰가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앞으로도 언론기관이 기부금 관리의 투명성을 더 높여나가고 언론인 스스로가 자선행위에 앞장선다면 이 땅에 나누기 문화가 더 빨리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나누어 갖는 기쁨도 누리고 나누기문화 정착에도 공헌할 수있으니 이야말로 일석이조이다.
이지순ㆍ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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