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 1호’ 최종길 교수를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7층 비상계단에서 떨어뜨렸다는 진술이 확보됨에 따라 최 교수 사인에 대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가 결론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조사를 주도하는 김형태 제1상임위원도 “늦어도 이 달 말이면 위원회의 공식 결론을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밝혔다.
최 교수가 타살됐고, 이를 당시 중앙정보부가 조직적으로 은폐ㆍ조작했다고 공식 결론이 나올 경우 1987년 안기부의 수지김 간첩 조작 사건과 마찬가지로당시 지휘계통에 대한 전면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새로운 타살 증언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10월 당시 중정 직원들에 대한 소환조사에서 최 교수가 중정수사관들로부터 고문을 당했고 중정이 발표한 현장검증조서ㆍ부검감정서 등이 조작됐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중정 사무실에 남아 근무하고 있던 간부가 “최 교수를 7층 비상계단에 건물 밖으로 밀었다는 수사관의 보고를 받았다”고 진술함에 따라 중정이 최 교수를 간첩으로 짜맞추기 위해 무리한 조사를 벌였지만끝까지 이를 부인하자 수사관들이 건물 밖으로 떨어뜨려 숨지게 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또 다른 중정간부가“최 교수가 간첩단과 연루되지 않았다는 내부결론을 소환 2일만에 내렸다”고 증언한 것도 이 같은 해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위원회는 이에 따라 최 교수가 가혹한 고문으로 인해 가사상태에 빠졌거나, 이미죽음에 이르러 수사관들이 자살로 은폐하기 위해 최 교수를 건물 밖으로 던졌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수사전망
의문사 진상규명위는 중앙정보부에 의한 의도적 살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중정의 사건 공작 전모와 조직적 은폐 의혹에 대한 전면적인조사와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1973년 사건 발생 직후 중정은 자체 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사를 받던 최 교수가 화장실에 갔다 동행했던 수사관김모씨의 만류를 뿌리치고 창 밖으로 투신했다”면서 김씨 등 담당 수사관 2명을 직무태만 등으로 자체징계하는데 그쳤다.
이어 88년에는 공소시효 만료(88년 10월 16일)를 앞두고 서울지검 형사 1부에서 재조사를 했지만 “증거가없다”며 수사 중단을 발표한 바 있다.
위원회 관계자는 “당시 사건 결재라인에 있었던 당사자들에 대한 조사는 외국에 살고 있는 수사관 1명, 김치열 당시 중정차장, 이후락 당시 부장을 제외하고는모두 마친 상태”라며 “이들 3명에 대해서도 현지에 조사관을 파견하거나 소환장을 발부했지만 조사협조를 거부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타살로 결론이 나더라도 공소시효가 이미 끝나 사건 조작 은폐와 관련된 당사자들을 처벌 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과거 정보기관에 의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이들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차원에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하고 진상 규명을 통해 도의적인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최종길교수 사건이란
1973년 10월19일 오전 1시45분께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 남산 합동심문실 건물옆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후 최 교수의 주검은 국내 ‘의문사 1호’로 기록된다.
최 교수가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의 참고인으로 당시 감찰실 직원이었던 동생 종선씨와 함께 자진출두한지 3일만의 일이다.
최 교수는 출두하기 직전 서울법대 교수회의에서 “총장과 교수진이 유신 반대 시위로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을만큼 ‘10월 유신’으로 서슬이 퍼렇던 군사독재정권에 비판적인 지식인이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최 교수가 간첩임을 자백한 뒤 죄책감으로 중앙정보부 건물 7층 화장실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이듬해인 74년 12월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최 교수 추모 미사에서 “그의 죽음은 전기 고문에 따른 심장 파열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어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88년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최 교수가 만류하는 중앙정보부 직원을 뿌리치고 화장실에서 투신했다”고 결론짓고 관련 직원을 관리소홀로 문책하는 선에서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말 유가족으로부터 진정을 접수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양승규ㆍ梁承圭)는 올 8월20일 “당시 수사 기록과 중앙정보부 수사관 등에 대한 조사 결과 최 교수가 간첩이라고 자백한 사실이 없고 사체 엉덩이 부분에 멍든 흔적이 발견되는 등 조사 과정에서 고문을 당한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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