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거스 히딩크 감독은 9일 미국과의 평가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서 지난 1년간 선수들에게 누누히 강조해온 사실을 또 한번 상기시켰다. 1년 훈련을 모두 마친 시점서 대표팀의 베스트가 누구인지를 확인시켜준 순간이었다.
“경기 매 순간순간마다 선수들의 역할이 달라진다”는 설명대로 히딩크 감독은 지난 1년동안 대표팀을 오간 선수들에게 ‘1인 2포지션 갖기 운동’을 벌였다. 한 포지션을 전문적으로 파고들어 스타 대접을 누렸던 한국 선수들에겐 그의 전술적 요구가 너무 난해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요구에 부응하며 2개 이상의 포지션 소화에 성공한 선수들은 이제 월드컵 본선무대의 주전자리를 사실상 굳혔다.
히딩크 감독이 인정한 대표팀 최고의 ‘만능 선수’는 단연 유상철(30ㆍ가시와). 9일 미국과의 평가전을 앞두고도 줄곧 공격형 미드필더로 훈련했던 그는 갑작스레 중앙수비수로 출장, 결승골을 뽑아내 ‘깜짝 변신’에 성공했다. 히딩크감독으로부터 “정신력이 아주 강하고 수비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유상철은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이후 처음으로 중앙수비를 맡아본다.아직 적응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멋쩍어 했다.
송종국(22ㆍ부산) 역시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A학점’을 받은 만능선수. 애초윙백으로 기용됐던 그는 홍명보를 대체할 중앙수비수로 낙점 받는가 싶더니 9일 미국과의 평가전에선 유상철과 포지션을 바꿔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다.“윙백시 창조적인 플레이가 돋보인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어 이젠 3군데 포지션을 소화하게 된 셈.
수비형 미드필더로 입지를 굳힌 박지성(20ㆍ교토)은 황선홍 아래에 포진한 처진 스트라이커(또는 가운데 공격형 미드필더)로 등장해 활발한 움직임을 선보였고 이을용(26ㆍ부천) 역시 왼쪽 윙백과 수비형미드필더 자리를 모두 커버하는 폭넓은 활약으로 히딩크 감독의 신뢰를 받고 있다.
이외에 윙백과 공격형 미드필더를 오가는 최태욱,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로뛰어 온 설기현, 최전방과 처진 스트라이커를 오가는 황선홍, 중앙과 좌우를 오가는 이천수 등이 ‘다양한 기능’을 갖춘 선수로 주전자리를 굳히고있다.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의 포지션을 뒤바꾸는 까닭은 수비라인와 미드필더들의 협동플레이에 큰 효험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송종국은 “내가 공을 가지고 있을 때 중앙에 공간이 생기면 항상 전진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때 수비형 미드필더가내 자리로 들어오기 때문에 결국 나는 미드필더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준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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