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우리의 내부로 걸어 들어와서 우리의 일부가되는 것은 그 낯선 본질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낯선 것을 만나기 위하여 우리는 길 위에 선다. 영혼이란 낯선 풍경을 만나 깨어나는 자기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허만하(69) 시인은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ㆍ1908~1967) 시인의 삶과 시에 관해 쓴 산문집 ‘청마 풍경’(솔 발행)을 이런 서문으로 시작하고 있다.
허씨 자신의 영혼은 청마라는 다른 낯선 영혼을 시의 순례길에서 풍경으로 만나 깨어난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이 산문집은 허씨가 1973년 이후 올해까지 청마에 관해 쓴 29편의 산문을 묶은 것이다.
등단 이후 44년간 두 권의 시집밖에 내지 않았지만, 20세기말 한국 시사에서 더없이 높은 정신의 경지를 성취한 시인으로 꼽히는 허씨의 절제되고도 깊은 사유가 담긴 문장은 이 산문집에서도 여일하다.
허씨는 경북대 의대생으로 재학중이던 1954년 대구에 강의 온 청마를 처음 만났다.
전후 혼란기를 살던 문학청년은 ‘그 烈烈(열렬)한 孤獨(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運命(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생명의 서’ 부분)의 시인 청마를 만나면서 청춘을 “완전히 매혹” 당하고 만다.
허씨는 이후 청마의 주례로 부인과 결혼했다.
이 책은 처음부터 계획된 하나의 틀 아래 짜여진 평전은 아니다. 하지만 허씨는 청마 사후 35년여를 몸 닿는대로 일본의 청마 유적지를 답사하기도 하고, 그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실증적으로 바로잡고, 이중섭 윤이상 김춘수 등 예술인과의 교유에 얽힌 일화들도 들려주면서 청마에 관한 풍경화 한 폭을 그려온 셈이다.
그 한 편 한 편의 글을 꿰뚫고 있는 것은 “시 정신을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매어단 우리 시대 마지막 시인”인 청마를 통해 보여주려 한 ‘예술혼’의 의미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