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중심가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했다.거리 한편에서는 귀를 찢는 스피커소리, 노랫소리가 들렸지만 전반적으로 조용한 편이었고 둘 사이의 충돌과 폭력장면은 TV화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세계의 뉴스 네트워크에도 잡히지 않았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은 한국의 친절과 번영, 질서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몇몇 이해집단이 이 기회를 망치는 것은 국가적 차원의 손실이 된다. 상이 값질수록 이해당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월드컵 기간에 이런 우려가 눈 앞에 펼쳐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농민, 노조, 학생, 환경운동가가 월드컵대회를 통해 자신들의 분노를 세계의 TV시청자들 앞에서 주장하는 기회로 활용하면 어떻게 될까.
당국은 무력을 통한 시위진압을 자제해야 한다. 물리적 대치는 프라임 뉴스가 노리는 선정적인 장면이다.
시위대는 방송을 타면서 자신들이 바라는 최고도의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려 할 것이다. 어차피 시위라는 행동양식 자체가 관심을 최대한 끌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저항에너지를 이성적인 논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공론의 장'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공론의 장은 저항집단으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게 하고 시민들이 이를 토대로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신문, TV, 라디오 등 미디어는 이를 위한 토론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정치인은 이러한 공공의 이슈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밝혀 각자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한국은 빠르게 토론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내가 살아본 어떤 나라에서도 TV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토론자가 참가하는 토론회가 이렇게 자주 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질서와 규칙 속에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토론문화는 서구에서는 그리스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귀족사회 전통으로부터 기원한다.
또 이것이 현재 의회정치의 기반이다. 한국의 TV 토론프로그램에서도 이 같은 토론의 정신은 잘 드러난다.
시위대와 정치인의 국회에서의 행동은 바뀌어야 한다.
선거에서 대표로 당선된 사람들이 국회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싸우는 것은 자신들의 품위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이들을 뽑아준 시민들에게도 민망한 행동이다.
최근 있었던 시위는 쌀개방으로 인해 생존을 위협당하고 있는 농민들의 시위였다.
효율적인 환경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된 수입쌀이 등장하면 동네 슈퍼마켓에서 한국의 쌀을 밀어내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전통산업의 하나인 쌀농사의 포기는 농촌사회, 국토이용의 변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쌀개방은 서로 다른 이해집단이 대립하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그리고 심각한 논쟁 거리다.
물론 대부분의 국민은 저렴한 쌀의 수입으로 이익을 본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인구 가운데 농민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고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다.
또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은 금방 황폐화한다. 농토가 사라져 국토가 빠르게 침식된다면 그로 인한 생태적 영향은 심각하고 영구적이다.
농민들은 공론의 장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충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집회나 시위가 아닌 토론의 장을 이용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해결점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쌀 개방문제에 관해서는 농민들의 실업이나 국토이용의 문제점 해결을 위해 유기농법 활용, 아이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치는 교육농장 설립 등의 대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의 폭력 시위는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알란 팀블릭 영국인 전 마스터카드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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