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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탐방 / 한국과학상 수상 수학자 황준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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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탐방 / 한국과학상 수상 수학자 황준묵

입력
2001.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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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000이 오늘부터 수학을 그만두고 시를 쓰기로 했답니다." 이 얘기를 들은 저명한 수학자 D. 힐버트는 말했다."잘됐군. 그 친구는 수학자가 될 만큼의 상상력은 없었으니까." 수학이 얼마나 상상력을 요하는 학문인 지를 말해주는 유명한 일화다.

한국 학생들의 수학 선호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는 조사결과가 나올 만큼 수학적 토양이 척박한 우리 현실에서 세계 수학계의 난제 중의 난제인 ‘라자스펠트 예상’(Lazarsfeld Conjecture)을 증명해낸 고등과학원 황준묵(38) 교수는 특히 관심을 끈다.

그 공로로 수학자로는 6년 만에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과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황 교수를 서울 청량리 과학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 후보로까지 점쳐지고 있는 유명한 학자답지 않게 수줍음이 많았다.

"수학 천재였다거나 그렇지는 않았어요. 국제 올림피아드 한 번 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의 연구분야는 공간과 도형의 학문인 기하학이다.

학부(서울대 물리학과)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수학적 개념이 좋아서 대학 3학년 때부터는 물리학보다 수학 강의를 더 많이 들었어요."

미국 하버드대 수학과 석ㆍ박사를 마치고 1996년부터 3년간 서울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했지만 곧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고등과학원으로 옮겼다.

"서울대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 때는 캠퍼스를 산책하며 생각에 잠기는 게 가장 행복했었지요."

수학자에게 사색은 곧 연구다. "어떤 문제를 풀 때 전체적인 영감은 한 순간에 느닷없이 떠올라요. 그 때가 가장 행복하지요. 이후 그 영감을 논문으로 내놓기 위해 계산과 수식을 반복하는 과정은 수학자도 수험생들 만큼이나 지겨워 합니다."

15년 묵은 라자스펠트 예상을 푼 '영감'도 그렇게 찾아왔다. "홍콩대의 친한 동료가 97년 초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했을 때는 당장 풀 수 있을 것 같았지요. 그런데 좀 더 연구해보니 그 실마리는 특수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정말 순간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즉시 그 동료에게 e메일을 보냈다. 라자스펠트 예상이 속한 복소다양체(복소수를 좌표로 하는 공간) 분야와는 전혀 상관없는 변형이론, 미분방정식 이론, 대수ㆍ기하학에 등장하는 군론을 혼합해 증명을 완성했다.

"사람들은 수학 없이는 컴퓨터도 돌아갈 수 없다는 걸모르는 것 같아요. 숫자 둘을 곱하기는 쉽지만 이를 원상태로 나누기는 힘들죠."

이러한 개념에 바탕해 최근 각광받고 있는 컴퓨터 암호론은 수학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는 인재들이 수학을 멀리하는 데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각 대학 수학과 대학원이 미달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주 뛰어난 학생을 중심으로 아직 수학사랑의 명맥은 유지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수줍음 뒤에 숨어 있는 그의 천재적 상상력은 작곡가(황병기 전 이화여대 교수)와 소설가(한말숙)를 부모로 둔 데도 이유가 있는 듯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라자스펠트 예상'

‘라자스펠트(Lazarsfeld)예상’은 미국 미시간대 라자스펠트 교수가 1984년 예측한 명제이다.

이 개념을 이해하려면 기하학자들의 사고방식을 알아야 한다. 보통 사람은 세계지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평면적인 지도만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유추해낼 수는 없다.

그러나 경도와 위도 등 지도상에 명시된 데이터의 의미를 모두 알고 있는 기하학자라면 지도를 보는 것만으로 우주상에 공처럼 둥실 떠 있는 지구를 바로 떠올릴 수있다.

이처럼 기하학자의 머리 속에는 복소수(실수와 허수로 이루어진 수)를 데이터로하는 다차원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의 특정 부분에 대칭성이 많은 좌표들이 존재한다면 이와 대응이 되는 공간에도 대칭성이 많은 좌표의 무리가 존재해야한다는 것이 ‘라자스펠트 예상’이다.

고등과학원 황준묵 교수가 이 예상이 ‘참’임을 증명하자 라자스펠트 교수도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라자스펠트 예상뿐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에 풀린 난제 중에는 350년 전 프랑스 수학자 P.페르마가 남긴 유명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있다.

페르마는이 공식을 써놓고 종이 공간이 좁아 증명은 생략한다는 글만 남겨 수백년간 수학자들의 애를 태웠다.

또 과일을 쌓을 때 피라미드 형식으로 쌓아야만 가장 많이 쌓을 수 있다는 가설인 ‘스피어 패킹’도 최근 해결된 유명한 증명 중 하나다.

아직 증명하지 못한 문제 중 유명한 것으로는 리만 가설이 있다. 특정한 함수에 있어 그 함수가 어디에서 0이 되는 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수학자들이 말하는 좋은 문제란 꼭 오래된 문제만은 아니다.

그 문제를 푸는 데 전혀 예상치 못한 영역의 공식이나 이론이 복합적으로 적용돼야 하며, 또 다른 문제 해결에도 연쇄적으로 실마리를 제공하는 증명일수록 좋은 문제이다.

유명한 문제들이 해결될 때마다 많은 수학자들은 설레는 한편, 비참함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왜 저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하는. 그리고 발표된 증명의 오류를 찾아내는 과정을 거쳐 전세계 수학자들로부터 완벽하게 검증 받는데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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