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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일여자정보고 박재련 교감…12월만 오면 '무대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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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일여자정보고 박재련 교감…12월만 오면 '무대외출'

입력
2001.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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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련(48) 서울 은일여자정보산업고교 교감은 해마다 12월이 되면 ‘바보 덕구’가 된다.극단 증언의 연극 ‘빈 방 있습니까?’의 주인공 덕구 역을 벌써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맡아 왔다.

올해에도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소극장 무대(12일~2002년1월 6일)에서 그는 또 한 번 ‘덕구’가 된다.

그는 정규 연기수업을 받은 적은 없다.

경기 남양주시 동화고 역사교사로 있던 1980년 “그저 연극이 좋아서” 연출가 최종률(55)씨와 증언을 창단하고 이듬해 ‘빈방 있습니까?’를 무대에 올렸다.

“전업배우가 아니기에 바보 덕구 역만 해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단원 20여 명인 이 극단의 대표 자리도 맡고 있다.

‘빈 방 있습니까?’는 한 교회 연극반의 성탄극 준비과정을 다뤘다.

여관 주인 역을 맡은 17세 정신지체아 덕구가 순수한 마음 때문에 대본과 다른 내용을 연기한다는 줄거리다.

빈 방을 애타게 찾는 요셉과 만삭의 마리아가 너무 불쌍해 ‘빈 방 없어요’ 대신 ‘빈방 있어요’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관객은 이 말에 폭소를 터뜨립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덕구의 독백을 듣고는 울먹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죠. ‘제가 연극을 망쳤어요. 하지만 예수님이 어떻게 마구간에서 태어날 수 있어요? 내 방에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 독백을 할 때면 늘 눈물이 핑 돕니다.”

6일 서울 동숭교회 연습실에서 만난 그가 들려준 사연은 참으로 많다.

80년대 말 맞선을 본 후 이 연극을 봤던 연인은 자녀둘을 둔 중년부부가 돼 해마다 꽃을 들고 찾아오고, 94년 단역으로 출연한 유오성은 지금 영화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극중 잘 생긴 남자를 부르는 호칭도 알랭 들롱에서 주윤발 최수종 최민수로 바뀌었다.

“연극이 끝난 후 꼭 이러는 관객이 있어요. ‘덕구역을 맡은 저 배우, 정상인처럼 연기 잘 한다’. 또 ‘말 좀 똑바로 해보세요’라고 하는 어린관객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뷰 도중 안경을 벗고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니 영락없는 ‘덕구’다.

옆에 있던 부인 김충실(45)씨도 “12월에는 신체리듬이 진짜 바보처럼 되기 때문에 옆에서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농담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박씨는 “착한 덕구에게 감동을 받는 관객이 있는 한 최소 4, 5년 후까지는 무대에 설 것”이라며 “학교에서 퇴직한 후에는 유랑극단을 만들어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싶다”고말했다.

그는 여전히 17세 순수한 덕구였다. 월~금 4시 30분ㆍ7시 30분, 토ㆍ일 3시ㆍ6시. 최종률 강신일 조승희 윤지현 등 출연. (02)2269-9005

/글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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