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차이나타운이 어디 있어요” 외국관광객들이 서울을 떠나면서 묻는 질문에는 차이나타운도 들어 있다.울긋불긋한 각종 장식으로세계 곳곳에서 명물로 자리잡은 차이나타운이기에 번듯한 중국풍 거리를 찾을 수 없는 우리 나라가 이상하게 비쳤을 것이다.
사실 우리 나라 최초의 차이나타운으로 한때 번창했던 인천 중구 북성ㆍ선린동 일대 화교촌은 이제 관광명소로 내세우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다.
그러나 한류(韓流)열풍에다 2002 월드컵 중국특수가 불어닥치면서 인천 화교촌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떠났던 화교들이 되돌아오고, 중국풍 음식점들이 다시 문을 열고 있다.
7일 오후1시 경인전철역 종점인 인천역앞 광장. 길 맞은편에 중국식 전통대문인 파이로우(牌樓)가 보인다.
4개의 붉은 기둥과 일곱단 지붕으로 만들어진 파이로우에는 중화가(中華街)라고 적혀 있다. 인천 화교촌의 입구다.
이 곳을 지나 작은 언덕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300m구간 양편에 중국식 전통주택과 붉은색 간판의 울긋불긋한 음식점들이 손님들을 반긴다.
중국 서적과 토산품, 전통의상 등을 판매하는 화상(華商)도 적색 벽돌과 나무로 지은 허름한 중국식 건물들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 한 켠에 세계 최초의 자장면집 ‘공화춘’은 텅 빈 채 퇴색한 건물 간판만이 을씨년스럽게 걸려 있다.
공화춘이 쇠락한 과거의 흔적이라면 자금성은 재도약하는 인천 화교촌의 상징이다.
현대식 붉은 건물로 단장한 이곳은 1m가량의 긴 주전자로 손님들에게 엽차를 따라줘 눈길을 끈다. 주인인 화교 손덕준(孫德俊ㆍ49)씨는 3대째 중국음식점을 경영했던 화교집안의 후손으로 화교상권의 침체와 함께 1990년 인천을 떠났다가 3년전 다시 돌아왔다.
그는 “중국전통 음악이 넘쳐나고 상가들이 빽빽이 들어선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년 월드컵 때 중국 관광객이 몰려오면 차이나타운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붐비는 주말에는 화교촌 업소마다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 개업한 전통중국수제만두집 ‘원보’도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중국음식점들이 화교촌 상권의 핵심을 이루고 있어 다양한 볼거리와 전문상가 등이 부족하다.
거리에서 만난 중국인 사업가 총페이취(叢培奇ㆍ69)는 “한약자재 판매차 한달에 2~3번 인천을 들러 이 곳을 찾지만 제대로 쇼핑할 곳조차 없어 식사나 하는 정도”라고 아쉬워했다.
인천 화교촌이 생겨난 것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하면서부터. 중국 산둥(山東)지방 등에서 2,000명이 이곳에 정착, 중국요리집이나 잡화상 등을 운영했고, 1940년대에는 1만여명이 거주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한국전쟁에 이어, 중국과 국교단절, 60년대 화교에 대한 정부규제가 강화하면서 화교들은 인천을 등졌다.
남은 화교는 겨우 500여명. 이들은 첫 정착할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음식점, 한의원, 학교, 쿵후도장 등을 운영하면서 ‘한국속의 중국’을 만들고 있다.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화교촌이 지난해 6월 중국의 한국단체여행 자유화 조치가 내려지면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인천을 등졌던 화교들이 다시 모여들고, 중극음식점과 상점들이속속 들어섰다. 2년전 대여섯 곳에 불과하던 중국집은 현재 10개로 늘어났고, 중국전문상점과 중국 관련 유통업사무실도 20여개 업소가 성업중이다.
고무된 화교들은 “인천 차이나타운은 인천공항과 인천항과 가깝고 지난 5월 주변이 관광특구로 지정되는 등 개발여건이 좋다”면서 “월드컵을 계기로 인천의 명소로 다시 한번 각광받게 될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송원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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