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자꾸 빠진다고 걱정하는 어머니의 머리를 쓸어 넘겨 드리는데 머리카락 한 웅큼이 내 손에 잡혔다. 함께 간 모자 가게에서 ‘어떤 게 예쁘냐’며 애써 웃음짓는 어머니의 모습에 울컥 눈물이 났다.’(11월12일)말기 암으로 투병중인 어머니를 둔 한 아들의 일기를 담은 인터넷 사이트 ‘어머니 전상서’(www.episode9.com)가 네티즌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웹디자이너 이태성(李泰星ㆍ27ㆍ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씨와 어머니 김순옥(金順玉ㆍ54ㆍ부산 사하구)씨. 김씨는 지난 10월말 ‘폐암 말기, 수술 불가’라는 절망적인 판정을 받았다.
“1년여 전부터 몸이 안 좋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흘려 들은 것이 너무도 한스럽습니다. 오히려 지난 추석엔 어머니가 제 감기약을 구하기 위해 퉁퉁 부은 몸을 이끌고 문 연 약국을 찾아 헤매셨죠.”
막노동을 하는 남편(57)과 결혼한 두 딸(29,30)의 간호를 받고 있는 김씨는 자신이 몇 달 치료로 나을 수 있는 초기 암인 줄로만 알고 있다. 김씨가 충격을 받고 치료를 포기해 병세가 악화할 것을 우려한 가족들의 결정에서다.
“어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하실까봐 일을 그만 두지도 못하고 있어요. 이제라도 사실을 말씀드려 삶을 정리할 시간을 드리고 하루라도 더 오래 어머니 곁에 있는 게 올바른 선택이 아닌가 해서 괴롭습니다.”
김씨가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이틀째인 10월26일부터 쓰여진 일기에선 어머니의 극심한 고통과 이를 지켜보는 이씨의 절절한 슬픔이 그대로 묻어난다.
‘어머니의 초췌한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기 힘들다고 울음을 터뜨린 누나를 위로하며 나도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11월23일) ‘고물 수집, 병원 청소, 건설현장 잡부 등 궂은 일로 우리 3남매를 키워내신 어머니의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한 나는 천하의 불효자다.’(11월9일)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도 자식 걱정을 놓지 않는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은 이씨의 아픔을 더한다. ‘오늘 날씨 춥다니까 옷 두껍게 입고 나가라. 넌 아프면 안된다’는 어머니의 전화에 가슴이 미어졌다.’(11월3일) ‘집을 나서는 길, 유난히 김밥을 좋아하는 내게 오늘도 김밥 세줄을 내미신다.
깜빡 잊었다며 아파트 7층에서 나무젓가락을 던져 주고는 내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신다.’(11월12일)
“사람들이 저처럼 후회하지 말고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정성을 다했으면 하는 바람에 사이트를 개설했다”는 이씨는 “어머니를 살릴 수만 있다면 제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뒤늦게 철이 들었는지…”라며 낮은 소리로 흐느꼈다. “‘어머니가 완쾌하셨습니다’라는 마지막 글로 사이트를 정리할 수 있어야 할텐데요.”
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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