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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 거주자 우선 주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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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 거주자 우선 주차제

입력
2001.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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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모(42ㆍ등촌동)씨는 집앞에 그려진 우선주차구획선만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내년 3월 거주자 우선주차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최근 동사무소에서 실시된 거주자 우선주차 추첨에서 떨어진 뒤 주차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예전에는 동네 차량 전체가 빠듯하게나마 주차를 할 수 있었는데 우선주차구획선을 그은 뒤 오히려 공간이 더 좁아져 매일 매일이 주차전쟁이다. 밤늦게 귀가하는 차량은 아예 도로 진입자체를 포기해야 할 정도. 그는 주차단속이라도 시작되면 값비싼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서대문구에 사는 이모(37ㆍ홍제1동)씨는 그나마 다행한 편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가에서 매월 4만원을 내고 ‘나만의 주차공간’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들이 그의 자리에 무단 주차하는가 하면 주차금지지역에 버젓이 주차를 해도 아무런 조치가 뒤따르지 않아 “혹시 나 혼자만 돈을 내고 주차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억울한 생각이 들곤 한다.

관악구의 최모(53ㆍ신림4동)씨 주택은 거주자우선주차제 시행지역이 아니어서 최씨가 당장 걱정할 문제는 없다. 하지만 바로 옆 큰 길가에는 구청에서 주차구획선을 긋느라 분주한데 골목길 안쪽으로는 아무런 조치가 없어 문득문득 불안해진다.

지금처럼 아무 곳에나 주차를 하다가 갑자기 단속에 걸려 주머니를 털리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 태산이다.

▽갈곳없는 불법주차는 어디로…

서울시가 내년 3월 전면 시행을 목표로 밀어붙이고 있는 거주자우선주차제는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거주자우선주차제는 폭 5.5㎙이상인 이면도로중 소방차량 통행이 확보된 상황에서 주차구획을 정해 장애인-근거리 거주자-장기거주자-소형 차주 순으로 우선 배정해 주차하도록 하는 제도.

그러나 주차공간을 얻지 못한 차량은 어떻게 할 것인지, 우선주차 시행지역은 아닌 곳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많은 게 의문투성이어서 시민의 불안만 늘고 있다.

게다가 새 제도의 시행을 책임질 25개 자치구들이 시와 주민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 졸속시행의 우려도 높아졌다. 실제로 구별 시행률도 제 각각이고 불법주차에 대한 단속강도 역시 천차만별이다. 새 제도 도입에 따른 불편과 부작용이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거주자 우선주차제의 가장 큰 문제는 절대 부족한 주차공간에 있다. 아무리 묘안을 짜내도 주차 공간과 주차 차량간의 격차를 메울 수는 없다. 새 제도 시행에 따라 연말까지 생겨날 주차공간은 모두 30만면.

지난달까지 대략 20만여면의 구획이 설정됐고 나머지 지역에서 선긋기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그러나 시내 주택가 전체 차량대수는 총 178만여대. 내년 초까지 마련되는 거주지 우선주차지역과 기존의 주택가 공영주차장 등을 포함하면 적법주차가 가능한 차량은 123만여대로 55만여대는 불법주차 신세를 피할 수 없다.

시는 이 같은 현실을 무시하고 제도 강행을 고집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무엇보다 시민의 적법주차 의식을 고취시키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제도확립에 중점을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는 강행, 구는 고민, 전문가는 연기

난감해진 측은 집행권자인 자치구들이다. 구획을 설정해 주차요금을 징수할 수는 있지만 낙첨 차량들의 불법주차를 마구잡이로 단속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구청들의 해당 부서는 불법주차를 견인해달라는 유료주차 주민들의 신고와 주차구획을 늘려달라는 집단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새 제도의 졸속시행을 문제삼을 태세다. 교통문화운동본부 박용훈(朴用薰) 대표는 “단체장이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음에도 거주자우선주차제를 밀어붙이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며 “제도 시행을 최소한 2년 정도 연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주자우선주차제는 서울시의 강행 의지에 따라 내년 초에 전면 시행될지 모르나 상당기간 ‘반쪽짜리 제도’의 오명을 벗기는 힘들 것 같다.

서울시는 내년 3월 거주자우선주차제 전면시행을 앞두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졸속시행에 따른 파열음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강서구 화곡8동 주택가의 주차구획정리작업 모습.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성공한 자치구 사례

거주자우선주차제의 시행률은 구(區)별로 천차만별이다. 주민들의 반발여부에 따라 밀어붙이는(?) 속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대체로 잘 사는 동네, 즉 부자구는 순조로운 편이고 상대적으로 ‘없는 구’가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 제도를 전면 실시중인 자치구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주차구획선을 긋고 있는 구도 있다. 25개 자치구중 전면 실시중인 구는 중구 용산 성동 동대문 은평 영등포 금천 송파 강동 등 9개구이다.

주차구획선이 1만9,688면으로 가장 많은 송파구는 각 지역의 주차현황을 꿰고 있는 동장들을 전면에 내세워 성공한 케이스. 어차피 거주차 우선 주차권이 모자랄 수 밖에 없어 동장들이 주변의 업무용 건물주들에게 주차장 야간개방을 설득하고 다녔다.

상가건물의 주차장을 오후 8시이후 주차권이 없는 주민들에게 거주자우선주차제와 같은 가격으로 개방토록 한 것. 설득은 효과를 거둬 송파구는 얼마전 서울시로부터 ‘올해의 주차장확충 우수구’에 선정돼 10억5,000만원의 보조금을 받기도 했다.

10월부터 전면시행에 들어간 은평구는 야간시간대 불법주차를 추방하기 위해 주차단속 인력을 대폭 늘렸다. 주민 신고시 출동해 ‘딱지’를 뗀 뒤 곧바로 견인하는 초강수를 두고 있다. 초기에는 주민들의 반발도 컸지만 2개월여가 지나면서 주민들의 주차의식도 점차 바뀌어 이 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또 양천구와 동대문구는 거주자 우선주차 구획내에 외부 차량의 주차를 막기 위해 별도로 공동주차지역을 설치해 운영중이며 영등포와 성동구 등은 동전식 주차미터기를 활용, 주차공간의 부족분을 해소할 계획이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몰래 주차' 단속할 무인관제시스템 나와

거주자우선주차제의 맹점은 유료주차 공간에 외부차량 진입을 막기 어렵다는데 있다. 단속반이 전 구역을 하루종일 감시할 수도 없고 주차권자가 매번 당국에 신고하기도 번거롭다. 비어 있는 시간에 외부차량이 ‘몰래 주차’를 하더라도 단속반이 이를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한 벤처기업이 ‘무인주차관제시스템’을 만들어 강남구측에 시연회를 갖기로 했다. 이 시스템은 주차면 인근 전신주 등에 일종의 카메라 역할을 하는 ‘비젼센서’를 설치해 외부차량이 진입할 경우 곧바로 주차권자의 휴대폰과 중앙관제센터ㆍ주차단속반으로 연락하도록 한 장치.

외부차량의 불법주차 여부를 즉각 알 수 있다. 1개 시스템으로 최대 10면을 감시할 수 있으며 설치비용은 1면당 70만원 가량이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외국의 사례

도심의 주차전쟁은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과 일본의 대도시들도 주차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우리와 다른 점은 새 제도의 도입시 적절한 홍보와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주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것. 또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했다.

일본은 주차문제 해결을 위해 1962년부터 ‘자동차보관에 관한 법’(일명 차고법)을 시행중이다. 차고지가 확보되지 않으면 차량등록을 허가하지 않는 제도다.

1991년부터 차량등록시 담당 공무원이 직접 차고를 확인하고 차량이 주차하는지를 계속 점검하도록 했다. 또 견인된 차량은 차고가 없으면 차고를 갖출 때까지 차량을 내주지 않는다. 내 집 주차장 확보가 힘든 지역에선 공동주차장이 활용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 많고 도로가 좁은 유럽에선 서울시와 비슷한 거주자우선주차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경우 10년전부터 시내 이면도로에 주차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차공간이 부족한 데다 불법주차 과태료에 대한 반발이 컸지만 교통정책 입안과정에 주민대표를 참석시키는 등 성실한 대민홍보를 통해 주민불만을 무마시켰다. 이 제도는 차량증가로 점차 시 전역으로 확대되는 추세이고 우선주차공간을 배정받으려면 신청후 3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 제도의 정착을 위해 지하철역등에 환승주차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런던이나 파리, 제네바 등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유형의 거주자 우선주차제를 시행하고 있다. 거주자와 상근자를 위주로 하는데, 주차시간에 제한을 두고 엄격한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다. 서울시와 같이 거주자와 방문자를 구분해 주차료를 차등 징수한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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