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배가 잔뜩 나온 나와 코치들처럼 몸을 방치해서는 안됩니다.”6일 오전 축구대표팀 훈련이 계속된 서귀포시 강창학연습구장. 거스 히딩크 감독은 훈련에 앞서 선수들에게 “한창 좋을 때 체력훈련을 소홀히 하면 정상급 선수가 될 수 없다”며 기초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히딩크 감독의 분위기는 차분했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딱딱했다. 네덜란드축구협회가 개발한 ‘악명 높은’ 기초체력 측정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 몇몇 노장 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눈치였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 후 도입한이 체력테스트는 15m의 거리를 항상 5초안에 돌파해야 하고 그나마 짧은 휴식시간도 갈 수록 짧아져 폐활량은 물론 피로회복도와 순발력까지 측정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지난 2월(오만)과 8월(네덜란드) 전지훈련 때 테스트의 위력을 실감한 선수들은 체력측정담당관인 닐스 드 프리스(26)씨를 저승사자로 부를 정도.
테스트에서 가슴에 심폐측정기를 부착한 선수들은 폭 15m의 구간을 20분 넘게쉴 틈 없이 달렸다. 코스 왕복만 84회. 김대업 주무는 “과거 대표선수들의 체력측정에 활용했던 ‘쿠퍼테스트(400m트랙을 12분 동안3,000m 이상 뛰어야 합격하는 체력테스트)’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고 귀띔했다. 지구력만을 테스트하는 쿠퍼테스트와 달리 15m를 전속력으로 계속 왕복하는 이번 테스트는 순간 스피드와 지구력을 동에시 측정하기 때문이다.
9일 제주월드컵경기장 개장기념 미국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막바지 컨디션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하는 대표팀의 히딩크 감독이 힘든 체력테스트를 실시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어차피 월드컵 본선서 맞붙게 될 미국과의 평가전서 전력노출을 피해야 하는 데다 16강 진출의 해법은 바로 체력에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날 테스트는 바로 본선서 상대해야 할 유럽스타일의 팀에대한 대비책의 첫 걸음이라는 의미도 있다.
측정결과 가장 뛰어난 체력을 지닌 선수는 대표팀의 꿈나무 이천수(20ㆍ고려대)였다. 선수들 대부분이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떨어졌지만 이천수는 지구력의 일인자로 꼽혀온 박지성(20ㆍ교토)과의 마지막 대결서 승리, 체력왕으로 등극했다.
김병지는 “선수생활의 큰 고비를 넘겼다”며 혀를 내둘렀고 김남일 역시 “굉장히 힘들다”는 한마디로 소감을 대신했다. 미국대표팀 관계자들도 한국선수들의 체력측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이준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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