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4일 오후 8시 광주월드컵경기장. 중국과 코스타리카의 C그룹 월드컵 예선경기가 끝난지 2시간이 넘었지만 경기장에서 빠져 나온 4만3,000여 관중 가운데 2만여명이 도로에서 귀가수단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인파 속을 헤매던 중국 관광객 J씨는 광주역으로 가는 셔틀버스 정류장에 간신히 도착했으나 길게 늘어선 줄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경기 후 시내관광을 할 생각으로 9시발 서울행 기차를 예약했는데, 관광은 커녕 기차를 놓칠까 걱정해야 할 처지다. J씨는 13일 서울에서 중국 대 터키 경기를 구경하려 했으나 계획을 취소하기로 한다.
광주발(發) 이런 시나리오가 6개월 후에도 단순한 우려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월드컵경기장 개장기념 경기를 치르면서 우려는 몇몇 경기장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달 13일 크로아티아와의 축구대표팀 평가전이 열렸던 광주월드컵경기장 주변도로는 완전 마비상태였다.
광주시는 주변의 도로공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광주 지하철 1호선은 예산부족 등으로 월드컵 개막전에 완공이 불가능한 상태다. 또 주변의 3개 신설도로 가운데 서구 월산동-월산터널 도로의 준공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시설을 갖추지 못해 경기장 관중 수송을 셔틀버스와 시내버스에 의존해야 하는 대전 전주 서귀포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을 거점으로 경기장을 왕복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천과 수원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특히 서울ㆍ수도권에 경기가 몰려 있는 6월11일부터 나흘간 연계 교통수단이 부족해 경기장 주변에는 큰 혼잡이 예상된다.
인천 문학경기장은 남구 학익동과 남동공단, 서해안고속도로의 남동IC 등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여서 평소에도 체증이 심한 곳이다.
또 대형 백화점과 할인매장이 몰려 있다. 인천의 월드컵 준비 관계자는 “인천 지하철 1호선과 승용차 짝홀수제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6월 대륙간컵 대회 때 홍역을 앓았던 수원시는 대책마련에 부심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서울_수원 전철을 제외하면 경부고속도 수원IC와 신갈-안산고속도 동수원IC를 연결하는 도로만으로 관중 대부분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일한 타개책인 동수원IC와 수원 월드컵 도로를 연결하는 신설도로가 땅 주인들의 반발로 월드컵 개막이전 개통이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는 승용차 짝홀수제 실시와 셔틀버스 운행, 시내버스 노선 조정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계획이다. 수원시 관계자는 “전철 수원ㆍ화서역과 경기장을 연결하는 임시 노선 4개를 확충, 80여대의 셔틀버스를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외국인 축구팬들을 위한 교통편의 시설은 여전히 부족하다. 비영어권 외국인을 위한 교통표지판과 대중교통 이용 안내도 등의 미비는 그들에게 인내를 요구할 게 뻔하다.
지자체로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택시나 대중교통 수단을 양보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꼭 필요하다”고 당부하는 게 고작이다.
김종구기자
sori@hk.co.kr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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