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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화산고' 학원 무림계 평정할 자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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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화산고' 학원 무림계 평정할 자 누구냐

입력
2001.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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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소문들‘화산고’(감독 김태균)에 관한 소문은 1년 전부터 나돌았다. 어디에 있는지, 실제 있는지조차 모르는 그 곳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의 핵심은 무술이었다.

학생과 교사가 무시무시한 무공 대결을 벌인다는 얘기였다. 하늘을 날거나 ‘매트릭스’처럼 벽을 타고 360도 회전하는 것은 예사라고 했다.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화산고(火山高)는 7월 아주 잠깐 문을 열어 교실을 공개했다. 빠른 속도로 수학공식을 풀어가던 교사. 갑자기 멈추더니 ‘휙’ 돌아서 “잠 자지 말란 말이야” 라며 분필을 날린다.

한 학생의 이마를 강타하려는 순간, 서서히 고개를 든 학생의 무서운 기(氣)에 분필은 거꾸로 돌아 교사의 이마를 강타한다.

그날 이후. 저잣거리에는 “정말 굉장한 놈일 것”이란 흥분과 “허풍일 것”이란 의심이 엇갈렸다. 11개월이란 긴 공사(촬영), 그리고도 6개월의 내부 손질(후반 작업)이 흥분과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누구도 알 길이 없었다. 교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교사와 학생들은 침묵했다. 기다려라. 때가 오면 부르리라!

그 학교가 마침내 8일 문을 연다. 그곳에는 몇일 전부터 장대비가 무섭게 내리고 있다.

▽'화산고’에 들어가 보니

소문이 사실이었다. 정말 ‘화산고’는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인물과 공간과 무협으로 가득했다. 번개를 맞아 극강투기를 갖게 된 순진한 소년 같은 경수(장혁)와 검도의 1인자 유채이(신민아)만이 아니다. 최단 기간 화산고 1인자가 된 고수 송학림(권상우)과 그의 자리를 뺏으려는 역도부 주장 장량(김수로)이 있다.

그들과 맞서는 ‘학원 5인방’으로 불리는 교사들도 만만찮다. 경수를 7번이나 퇴학시킨 학원무림의 최고수 마방진(허준호). 그 휘하에 머리 속을 모두 비워버리는 공명파장공을 구사하고, 연초단폐창으로 담배 피우는 학생들의 기도를 막아버리고, 힘이 천하장사이고, 가위손을 가진 4명의 교사가 포진했다.

‘화산고’에는 전설로 내려오는 무림비서 ‘사비망록’이 있다.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주입암기학파인 교감 장학사(변희봉)가 음모를 꾸미고, 그로 인해 학원 5인방의 폭력이 자행되고 학생 고수들은 그에 맞선다.

부모 뜻을 좇아 기필코 학교를 졸업하려고 그 싸움판을 피하지만 운명적으로 마방진과 대결해야 하는 경수. 그는 바로 허무한 ‘강호’의 세계를 아는 ‘무림’의 고수이다.

늘 마지막에 별난 표정(장혁의 기막힌 연기)을 짓는 그는 영락없는 명랑만화의 주인공이다. 때문에 중년들은 먼 옛날 무협지 속의 중국 무림 고수들을 다시 만나 반갑고 10, 20대들은 만화책이 살아 꿈틀거리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우선 무공이 우리 도장에서 갈고 닦은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능숙하기 때문이다. 허공으로 솟구쳐 귀신처럼 몸을 회전시키고(와이어 액션), 장풍으로 맞서고(특수효과), 찻잎을 날리거나 빗방울로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컴퓨터그래픽)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 느낌을 자연스럽고 극대화하기 위해 ‘화산고’는 ‘와호장룡’의 우아함보다는 스피드를 선택했다. 1시간 56분 동안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속도감이야말로 ‘화산고’의 가장 큰 무기이자 재미이다. 지금까지 이처럼 빠른 액션과 장면전환을 보여준 한국영화는 없었다.

그것뿐이라면 ‘화산고’는 그냥 조금 색다른 솜씨 좋은 액션영화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산고’는 액션만큼이나 색다른 시도를 했다.

내레이션과 자막을 뒤섞은 인물 묘사, 신문을 이용한 사건 설명, 화면 분할, 자유분방한 미장센(화면구도), 중심 인물을 앞쪽에 세운 극단적 근접촬영, 예상을 뒤엎는 넌센스적 상황전개와 만화적 재치로 유쾌한 농담과 웃음까지 만들어냈다.

학교를 다 돌아보고 나서 “이 장면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저 장면은 ‘황야의 무법자’ 냄새가 난다”거나 “영화의 관습을 벗어난 다양한 만화기법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화산고’는 그것을 절묘하게 배열하고, 그것을 디지털에 넣어 독특한 색깔을 입힘으로써 신나는 ‘판타지 무협액션’이란 분명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이제 한국영화도 황당한 상상력을 이렇게 멋진 스타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됐다. “한국영화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이렇게 만들었다

‘화산고’는 읽기가 아니라 ‘보기’ 와 ‘느낌’의 영화다. 그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영화는 와이어액션(피아노 줄을 매달고 하는 액션)과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최대한 살렸다.

모두 우리 기술. 피아노 액션도 과거 한 줄만 매고 단조롭게 수직, 수평 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3~5개의 줄을 조절하며 액션을 연출했다. 몸을 회전하며 공격하거나, 쓰러지는 것은 몸에 와이어를 감았다 당기는 방법을 썼다. 그 과정에서 장혁은 어깨뼈를 다치기도 했다.

찻잎과 대나무 잎이 날리고, 빗방울을 정지시켜 공격하는 것은 컴퓨터그래픽 합성이다. 화산고 전경도 컴퓨터그래픽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 세트이다. 현실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더욱 살리기 위해 ‘화산고’는 전체를 컴퓨터에 넣어 와이어도 지우고 색보정 작업도 했다. 그 비용만 무려 7억 원.

김태균 감독은 “참고할 작품이 없어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와이어 액션도 심형래가 만든 ‘우뢰매’ 같은 어린이 SF액션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찾아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 하나 찍었다. 홍콩에 의존하면 쉽지만 우리 색깔이 안 나올 것 같아 우리 힘으로 했다.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몰라 ‘무대포’ 정신으로 버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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