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뒤집힐 때 혼자만 빠져나가지 못해 ‘나만 죽었구나’하고 포기했는 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4일 새벽 제주 북제주군 한경면 죽도 서쪽16마일 해상. 선원 박근협(24ㆍ경남 통영시 도남동)씨와 동료선원 10명을 태운 경남 통영선적 통발어선 제808해성호(72톤급)는 운명의 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새벽 4시께 ‘쿵’하는 소리와 비상벨 울림에 잠을 깬 선원들은 선실로 물이 들어 오자 공포로 가득찬 비명을 지르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어 배는 완전히 뒤집어 졌다.
그러나 박씨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홀로 선실에 갇혔다. 차가운 바닷물이 발목에서 무릎, 허리로 올라오는 것을 느끼면서 박씨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하늘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물은 어깨 위로는 더 이상 차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 한곳 바깥으로 나갈 구멍이 없었다. 공기가 있는 부분으로 목을 내놓고 버티느라 몸은 굳어갔다.
의식이 혼미해지면서 생에 대한 집착도 점차 사라져 갔다. 그 순간 “누구 있어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제주해경 특수기동대였다. 그가 발견된 것은 사고 후 12시간 가까이 지난 오후 3시30분.
이후에도 그는 완전히 구조되기까지 2시간을 더 고생해야 했다. 잠수요원들이 박씨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물밑을 통해 탈출시키려 했으나 공포에 질린 박씨가 잠수를 수차례 거부했기 때문이다.
“다른 선원들은 어떻게 됐어요.” “2명은 시신을 발견했고 나머지는 아직 못찾았는데 다 죽은 것 같아요.” 자신만 죽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재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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