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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기자의 영화산책] '조폭영화'에서 조폭은 비하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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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기자의 영화산책] '조폭영화'에서 조폭은 비하대상?

입력
2001.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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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조폭영화’가 문제는 아니다. 장르의 유행은 상업영화의 숙명이기도 하다. 문제는 조폭영화가 최소한의 조건과 미덕, 새로움 없이 점점 말초적이고 퇴행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데 있다. 정말 ‘한국영화의 후퇴’라는 주장이 이제 ‘기우’만은 아니게 됐다.‘달마야 놀자’까지만 해도 아슬아슬하게 ‘마지노선’에 걸쳤다. 여전히 최근 한국 조폭영화의 관습성, 상투성을 탈피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산사(절)라는 극단적 대비의 공간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얄팍하기는 하지만 영화는 불교철학과의 접목을 시도했다. 그러나 ‘두사부일체’에 오면 그 선마저 무시한 싸구려 코미디로 전락한다.

조폭영화는 현실적이다. 조폭이란 존재는 액션의 본질이기도 하다. 미국 마피아, 일본 야쿠자, 제3세계 테러리스트가 액션장르의 단골 소재인 점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주류에서 밀려난 ‘불법’의 존재들이다.

영화는 바로 그 ‘불법’이란 사실에 주목한다. 그들의 비극을 통해 때론 기존 질서의 우월성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보다 큰 노림수는 그들의 폭력을 통해 합법적인 부조리와 모순을 공격하거나 비웃는 데 있다. 일종의 대리만족인 셈이다.

이런 영화는 현실에 불만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도가 소용없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 강력한 소구력을 발휘한다. ‘친구’는 ‘바닥에 떨어진 우정’을 먼 추억에서 찾았고, ‘조폭 마누라’는 여자 조폭을 통해 성차별을 통쾌하게 뒤집었다. ‘두사부일체’ 역시 학벌 중심 사회, 사립학교의 재단 비리에 농담처럼 칼을 들이댔다.

그것이 ‘귀신’이란 초인적 존재를 앞세운 ‘여고괴담’ 보다 더 용기 있는 비판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한국의 조폭영화에는 이상한 관습이 있다. 처음에는 무조건 살벌한 집단 패싸움을 보여준다. 그들은 세상물정에 어둡고 무식하다.

‘조폭 마누라’는 성에 깜깜하고, ‘두사부일체’는 인터넷, e_메일도 모른다. 학력에 대한 지나친 경멸, 조폭은 그래야만 되는 것처럼 아무데서나 조악한 욕설을 퍼붓는다. 웃음을 위한 가학적인 폭력의 남발도 여전하다. 심지어 ‘두사부일체’는 나름대로 판타지를 가진 ‘친구’까지 일회용 패러디로 소비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이런 관습과 자기비하야말로 우리에게 ‘대부’ 같은 장르의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이 나오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했다. 조폭영화가 현실에 존재하면서, 관객을 모독하지 않으려면 자기비하부터 먼저 버려야 한다. 한심한 것은 한국의 조폭영화는 갈수록 오히려 그것을 강조하고 있으니. 그래서 삼류다.

이대현기자

leedh@hk.d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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