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뮬란’에서 장성을 넘어 쳐들어 온 ‘오랑캐’를 한나라 사람들은 ‘슝누’라고 부른다.사마천이 ‘사기’(史記)에 기록한 대로 우리가 ‘흉노’(匈奴ㆍHsiung-nu 또는 Xiongnu)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머리는 정수리까지 박박 밀어 뒤로 땋아 내리고 털모자를 썼으며 눈은 쭉 찢어진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후대에 칭기즈칸이나 요, 청 황제의 초상에서 거의 그대로 나타난다.
기원 전 3세기에서 기원 후 1세기까지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동서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고 한 제국을 굴복시키기까지 했다가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이들은 누구일까.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지건길)이 그 의문을 풀기 위해 나섰다.
몽골 국립역사박물관 및 몽골 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와 맺은 협약에 따라 올 7월 12일부터 8월 28일까지 몽골 아르항가이에서 ‘홋드긴 톨고이’(우물언덕) 유적을 공동 발굴했다. 아르항가이 일대는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에서 가까운 흉노족의 본거지.
1924~25년 러시아 탐험가 P.K. 코즐로프 조사단이 노인울라 유적에서 흉노족 귀족 고분 12기를 발굴한 이후 고대 동서교섭사 및 아시아사 연구의 핵심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지금도 이 일대에서 독일, 프랑스, 러시아, 미국, 일본, 터키 조사단이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박물관측은 1세기 무렵 흉노족 장군 무덤 4기를 발굴해냈다. 키 2㎙에 달하는 성인 남성 인골 1구, 여성과 어린이 인골, 시신과 함께 묻은 말뼈, 청동 말 방울과 말 재갈, 청동머리장식, 철제 칼 3자루, 활과 화살통, 화살촉, 토기, 칠기 등이 출토됐다.
이번 발굴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또 동아시아사를 중국 중심으로 잘못 해석해 온 편향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사에서 확인된 흉노족의 활동 영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이나 부여, 고구려 등의 영토와 상당 부분 겹친다. 좌현왕(左賢王) 우현왕(右賢王) 같은 정권 구조도 비슷한 시기의 한민족과 유사하다.
특히 신라 지배층의 북방 기마민족 유입설 등을 고려할 때 흉노족의 무덤 구조가 직사각형 구덩이에 시신을 안치한 나무 덧널을 넣은 다음 돌을 쌓아 올린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으로 삼국시대 초기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무덤 형태와 유사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발굴 책임을 맡은 윤형원(尹炯元ㆍ36) 학예연구사는 “현지에서 출토된 인골과 고대 한반도인 인골의 DNA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화재연구소와 함께 분석해 민족적 유사성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자들은 흉노가 몽골ㆍ투르크계 유목기마민족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의 몽골인들은 흉노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생각한다. ‘흉노’라는 한자 표기가 고대 몽골어로 사람을 뜻하는 ‘훈누’를 소리나는 대로 옮겨 적은 것이라는 사실도 언어학적으로 거의 확실해지고 있다.
한국외대 강사 이평래(李平來ㆍ45) 박사는 “18세기 준가르제국이 무너질 때까지 광대한 중앙아시아 일대는 유목민이 통치ㆍ장악했다”며 “이번 발굴은 동아시아사를 정주(定住)국가인 중국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역사적 오류를 바로 잡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물관은 20일 서울에서 몽골역사박물관 관계자들과 협약을 맺고 내년부터 2006년까지 2차 공동 발굴조사에 나선다.
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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