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를 거슬러 가려는 사람을 보면 일단 호기심이 생기고 이어 그 굳은 의지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다섯번째 음반 ‘시나브로’를 낸 유리상자의 느낌이 꼭 그렇다. 이들의 새 음반은 제목이 상징하듯 느긋하다. 음악도 여전히 ‘유리상자 스타일’이다. 따뜻하고 편안하다. 절대음감을 가졌다는 박승화(33)의 힘있고 안정된 음색이 여리고 감상적인 이세준(30)의 목소리를 받쳐주며 마치 한 사람의 것처럼 이어진다.
모두가 빨리 빨리 움직여야만 살아 남는다고 말하는 세상, 음반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다수의 가수들과는 정반대다. “음악을 하는 사람마다 색깔이 있잖아요. 어떤 음반을 내든 그게 제일 앞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나브로’는 정적인 개념이 아니다. 유리상자의 두 사람 역시 늘 같은 음악, 같은 자리에 머무르려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가리는 것도 별로 없다. 포크 듀엣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이들이지만 통기타만 고집하지도, 라이브 무대가 활동의 전부도 아니다.
필요하다면 전자 사운드는 물론, ‘출발 드림팀’에서 구르기도 하고 ‘서세원 쇼’에 나가 어색하나마 토크도 한다. 박승화는 태권도 선수 출신다운 운동실력을 보여주고, 토크 쇼에서 의외의 웃음도 터져 나오게 한다. “무엇을 하든 지나치지 않게, 자기 선을 지키면 되는 거지요.”
새 음반에도 모나지 않은 변화들이 있다. ‘사랑해도 될까요?’ (심현보 작사ㆍ작곡)는 유리상자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노래를 타이틀로 한 경우다. 무심코 들으면 박승화가 곡을 쓰고 이세준이 노랫말을 붙인 유리상자의 노래로 들리지만, 세밀하게 들으면 멜로디의 변화가 좀더 많아졌고 사랑의 설레임을 그린 노랫말은 좀 더 직설적이다.
두 사람이 가장 유리상자다운 곡으로 뽑는 ‘서로가 서로에게’와 비교해 들으면 차이가 보다 명확해진다.
그런가 하면 세번째 곡인 ‘Two Men Story’에서는 이전에는 없었던 발랄하고 유쾌한 뮤지컬식 멜로디에 30대에 접어든 자신들의 심경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일류 가수 아녀도 딴엔 인기가수 개인기 없어도 유쾌한 두 남잔걸/ 학연 지연도 배경도 없지만 세상을 다 내 것으로 만드는 노래 있어 든든한 우리죠…우리만큼 우리 노랠 아끼는 당신 있어 든든한 우리죠/ 그런대로 괜찮은 두 남자’
이번에는 뮤직 비디오도 ‘제대로’ 찍을 계획이라고 한다. 음반마다의 작은 변화들은 어느 순간 돌아보면 제법 큰 변화가 있었다. 두 사람은 처음과 가장 달라진 점으로 “절제된 보컬과 늘어난 자작곡”을 꼽는다. “물론 변하고 있을 때는 우리 둘 다 몰랐어요. 시나브로 변한거지요. 앞으로도 그럴 거구요.”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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