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비디오 여행’(MBC 일요일 낮12시) ‘영화 그리고 팝콘’(KBS2 일요일 오전11시) ‘접속 무비 월드’(SBS 일 낮12시)에서 영화 ‘꽃섬’을 본 적이 있는가.마치 거대한 영화 광고판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들 영화정보프로그램의 블록버스터 편식은 심하다. 이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즐겨본 시청자라고 해도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꽃섬’이나 ‘북경자전거’에 대한 정보를 접한 기억은 거의 드물 것이다.
대신 아직 개봉도 않은 ‘두사부일체’에서 주인공이 “두목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라던가 “계백장군이 계씨면, 똘이장군은 똘씨냐”고 말하는 장면은 낯익을 것 같다.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등 오락성 강한 작품들은 방식을 바꾸어가며 몇주연속 반복해 소개하기 때문이다.
2일 ‘영화와 팝콘’이 연말특집으로 ‘조폭으로 뜬 영화’를 정리한 것은 사실은 ‘두사부일체’를 광고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친구’ ‘신라의 달밤’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와 함께 아직 흥행 성적이 있을 리 없는 ‘두사부일체’까지 묶어서 소개했다.
배우 이원종 인터뷰까지 포함해 ‘달마야 놀자’에 할애된 시간은 시간 1분30초, 그러나 ‘두사부일체’는 10분 동안 소개됐다. 한 달 전인 11월 4일에는 ‘두사부일체’의 제작과정과 영화장면이 ‘메이킹 리포트’코너를 통해 8분 동안 방송됐다. ‘출발 비디오 여행’은 2주 연속 ‘두사부일체’를 내보냈다.
2일에는 ’60 세컨즈 무비’코너를 통해 예고편과 도입부, 그리고 마지막 결말까지 모두 5분50초 동안, 일주일 전인 11월25일에는 프로그램 오프닝으로 30초 동안 트레일러가 전파를 탔다. 물론 ‘접속 무비 월드’도 2일 포스터의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두사부일체’를 소개했다.
‘영화 그리고 팝콘’은 김희선 주연의 ‘와니와 준하’에도 이 같은 특혜를 베풀었다. 11월4일 오프닝에서 OST와 함께 트레일러를 30초 동안 내보낸 데 이어, 11월11일에도 전회 방송과 다를 바 없는 화면과 음악을 내보냈고, 18일에는 10분30초 동안 집중 소개됐다. 11월11일 방송에서 ‘와니와 준하’를 내보냈던 ‘접속 무비 월드’도 12월2일 코너를 바꾸어 또다시 방송했다.
‘아메리칸 파이2’나 ‘무서운 영화2’처럼 오락성이 강한 할리우드 영화에도 7~8분씩 할애했던 데 비하면 작가주의적 성향이 짙은 작품에 대한 반응은 멸시에 가깝다.
‘영화 그리고 팝콘’은 베니스영화제에서 평단의 호평을 끌어낸 ‘꽃섬’과 중국영화 ‘북경자전거’의 트레일러를 각각 11월25일과 11월18일 방송에서 약 20초 정도 아무런 설명 없이 내보낸 것으로 끝냈다. ‘출발 비디오 여행’도 ‘인 앤 아웃’ 코너에서 저예산영화의 고충을 설명하면서 ‘꽃섬’을 30초 정도 소개했을 뿐이다.
영화사의 한 관계자는 “배우들이 점점 영화 홍보를 위해 토크쇼에 나가는 것을 꺼려 한다. 대신 영화 프로그램이 오락성 강한 영화를 앞다투어 장시간 편성해 주기 때문에 홍보 효과가 크다. 돈으로 따지면 1억 이상의 효과”라고 말한다. “
결국 대형 오락영화들이 국민의 재산인 방송전파를 빌려준 장시간 공짜광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요일 낮12시대 15초 광고방송료는 약 250만원. ‘두사부일체’가 ‘영화 그리고 팝콘’ ‘출발 비디오 여행’에 나간 시간만큼 광고를 하려면 200억원을 넘게 써야 한다.
예술영화에 대한 투자를 병행하는 영국의 채널4, 프랑스의 카날플뤼와는 달리 우리 방송사는 오락 영화의 결실만을 따먹고, 예술영화를 더욱 외면케 하는 극단적 ‘편가르기’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들이 잇달아 영화사업에 진출하고 있는 마당이어서 영화 프로그램들의 이러한 편식은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영화정보프로그램의 존재 가치가 다양한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통로라는 데 있다면, 이 프로그램들은 이미 오래 전에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