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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워치] 아프간의 러시아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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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워치] 아프간의 러시아 서커스

입력
2001.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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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전쟁에는 미스터리가 여럿있다. 어떤 전쟁보다 언론의 접근이 어려웠던 탓에 그냥 묻힌 미스터리 가운데, 북부 동맹이 예상 밖으로 승승장구한 것이 대표적이다.국토의 10% 를 겨우 장악한 소수파 게릴라 세력이 나치 독일 전차군단의 전격전을 방불케 하는 승리를 거둔 것이다.

전통 복색의 북부 동맹군이 러시아제 탱크 부대를 앞세우고 수도 카불에 입성한 장면은 일반이 상상한 전쟁 양상과는 분명 달랐다.

북부동맹 승전뒤엔 러 지원

타지크 우즈벡 하자라 등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북부 동맹의 승전 가도를 열어준 것은 물론 미국의 융단 폭격과 근접 항공지원이다. 미국은 몇 주간에 걸친 폭격으로 탈레반의 낡은 탱크 등 정규군 전력을 무력화했다.

이에 따라 탈레반과 북부 동맹의 결전은 치열한 장기전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런 전망을 비웃은 일방적 승전 미스터리의 비결은 러시아의 지원이다.

러시아 언론은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가 타지크스탄 주둔 국경사단을 통해 탱크와 장갑차, 도하(渡河)장비 등을 대거 북부동맹에 제공했다고 전했다. 정비병 등 운용 인력도 함께 지원한다는 보도였다.

말 타고 싸우던 북부 동맹군이 단시일에 막강 전력을 갖춘 사실은 탱크병 등 전투 병력에도 타지크나 우즈벡 출신 러시아군이 끼었을 가능성을 의심하게 한다.

한층 깊은 미스터리는 러시아가 올초부터 북부 동맹에 중무기 지원을 크게 늘렸다는 보도다. 러시아가 자신의 세력권인 옛 소련 공화국의 안정을 위협하는 탈레반을 제어하려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뉴욕 테러 전부터 탈레반을 손 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주목된다.

어쨌든 북부 동맹이 전쟁 주도국이 아닌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어설픈 견제 제스쳐를 무시하고 수도 카불을 장악한 사태로 드러났다.

러시아는 카불 함락 직후 대형수송기 12대에 대사관 등의 인력과 장비를 싣고 입성, 10년 전 소련군 패주의 한을 풀었다.

미국이 러시아의 북부 동맹군 지원을 언급하지 않고, 카불 장악도 강력히 견제하지 않은 배경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미국이 빈 라덴 추적을 명분으로 아프간 남부에 진주하면서 이 곳의 파슈툰 부족을 친미 세력으로 끌어 들인 것은 꼭두각시 세력을 앞세운 분할 점령 구도에 다름없다.

여기에 주목하는 이들은 러시아의 전략적 움직임을 전통 깊은 서커스 묘기에 비유한다. 아프간 민중의 적대감과 이슬람권과의 유대를 고려해 낮은 포복으로 움직였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와 이해가 합치해 아프간 전쟁에 발 벗고 나섰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전례없이 미국에 영공을 개방했을 뿐 아니라, 아프간에서 축적한 경험과 정보를 제공했다. 아프간 내부 세력을 이용해 탈레반을 축출해야 한다는 조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이권등 열강이해 일치

대 테러 전쟁 협력을 명분으로 한협력의 대가로 러시아가 얻은 것은 많다. 아프간 분할과 함께, 미국이 그토록 비난하던 체첸 전쟁을 대 테러 전쟁으로 인정 받았다. 미국은 체첸지원 중단을 약속했다. 여기에 WTO 조기가입과 EU 및 NATO와 협력관계를 보장 받았다.

푸틴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텍사스 정상회담에서 일찍이 없던 환대를 받고 전략 핵무기 감축 등에 양보를 얻어냈다.

미국은 냉전 종식 뒤 지속한 냉대와 멸시를 버리고 ‘서구 공동의 가치와 이익을 나누는 우방’이란 파격적 규정까지 선물했다.

러시아의 곡예와 미국의 갈채가 어울린 배경은 카스피해 석유 이권에서 비롯된 아프간의 전략적 가치다. 오랜 세력 다툼을 벌이던 미국과 러시아, 주변 열강은 약소국 분할을 통한 이권 배분에 타협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서 냉전 종식 10년 만에 다시 적나라한 힘의 행사와 이익 추구가 지배하는 신제국주의가 21세기 새 국제 질서의 중심논리로 대두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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