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장영주를 이을 독일 뮌스터의 한국인 소녀. 그가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한 소녀가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도 국제 무대에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성가를 드높여 잔잔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주인공은 ‘물처럼’이란 뜻의 예쁜 이름을 가진 김수연(金水然ㆍ14)양. 유학생 부부의 장녀로 뮌스터에서 태어난 김양은 다섯 살에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다.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독일 청소년 음악콩쿠르 뮌스터 지역 예선에서 만점을 받아 주위를 놀라게 했고, 1997년 뮌스터 음대에 합격해 만 9세의 독일 최연소 대학생으로 화제를 뿌렸다.
지난해 독일 청소년 음악콩쿠르에서는 심사위원 전원 25점 만점으로 1등, 덴마크 코펜하겐 고전음악 콩쿠르에서도 1등을 차지했다.
더 기특한 것은 김양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밝고 꿋꿋하게 음악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신학박사 학위 논문을 쓰던 아버지 김동욱(金東旭ㆍ45)씨가 95년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김양은 사실상 소녀가장이 됐다.
청소 등 아르바이트로 고학하며 생계를 꾸려가던 아버지는 그 뒤로도 두 번이나 쓰러져 거동이 힘들고 언어장애까지 겹쳤다. 어머니 지경순(池卿順ㆍ41)씨는 아버지와 두 동생을 돌보느라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딱한 사정이 알려지면서 동포사회와 뮌스터시가 돕고 나섰다. 아버지가 병으로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10년 체류기한을 넘기게 되자 뮌스터 시민들이 서명운동에 나서 체류기한을 연장시켰다.
김양 가족은 주변의 도움과 수연이의 연주료, 장학금으로 산다. 그나마 음악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국가가 거의 모든 비용을 대고 악기까지 빌려주는 독일의 교육제도 덕분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석했다가 김양을 알게 된 도서출판 한길사는 창립 25주년 행사로 수연이를 초청해 13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성공회 서울주교좌 대성당에서 독주회를 마련한다. 곧 후원회도 꾸릴 계획이다.
한국 데뷔 연주회를 앞둔 4일 김양의 목소리는 밝았다. 전화기 너머로 앳되지만 씩씩한 음성이 들려왔다.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희망을 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지씨는 “수연이는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다’며 오히려 부모를 격려하는 속 깊고 든든한 딸”이라고 했다. 공연 문의 한길사 (02)515-4811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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