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길에서 띄우는 편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1.12.05 00:00
0 0

요즘 들어 갑자기 세상이 살기 편해진 것 같습니다.여행취재를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는 특히 그렇습니다. 콧노래가 나올 정도입니다.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요? 바로 ‘길’ 때문입니다. 최근 굵직한 길들이 속속 개통되고 있습니다. 대관령 밑을 관통하는 터널이 완공되면서 영동고속도로가 왕복 4차선으로 확장개통됐습니다.

대전에서 진주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는 대진고속도로가 열려 서울서 진주까지 가는 데 4시간 정도면 족합니다.

만성 체증 지역인 중부고속도로 세 개의 터널 구간도 해결이 됐습니다.

호법 분기점에서 하남에 이르는 구간이 무려 왕복 8차선으로 넓어졌기 때문이죠.

조만간 죽령 터널이 완공돼 춘천에서 대구에 이르는 중앙고속도로까지 완전히 뚫리면 강원도 꼭대기인 화천, 춘천 지역에서 부산까지 대여섯 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게 됩니다.

더욱 좁아진 국토, 그래서 사람들이 구석구석을 쉽게 찾아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동안 교통의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했던 지역의 주민들이 큰 힘을 얻게 됐습니다.

주차장처럼 변한 길 위에서 낭비해야 했던 시간과 기름도 물론 절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서글픈 마음이 앞섭니다. 도로를 닦기 위해 불도저와 굴착기에 절단이 나 버린 곳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요즘 건설되는 도로는 옛날의 그것과 많이 다릅니다. 옛 도로는 산이 있으면 돌고 언덕에 막히면 지그재그로 타고 올랐습니다.

물을 만나야 겨우 다리를 놓는 것이 고작이었죠. 자연에 거세게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도로는 직선입니다. 자동차가 속력을 내기 위함이죠. 그래서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뭉개고 아니면 구멍을 뚫습니다.

물을 만나지 않더라도 고도 차이가 많이 나면 다리를 세웁니다. 중앙, 서해안, 대진고속도로 등이 모두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도로를 달리는 사람은 망가진 산하를 잘 보지 못합니다. 주변에서 봐야 잘 볼 수 있습니다.

멀쩡한 마을 한가운데에 어마어마한 교각이 들어서고 만만한 산의 허리는 빠진 이빨처럼 허물어져 있습니다.

도로포장률이 국가의 경쟁력이라지만 오히려 국가와 국토가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러한 도로공사의 첫째 이유는 경제 때문입니다. 건설과 토목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기 때문이죠.

국토를 보존하기 위해 땅을 파지 않으면 건설 인력이 살 수 없습니다. 경제가 돌아가지 않고 결국 나라가 도탄에 빠질 수도 있죠.

쌀이 남아돌아 농민들이 아우성을 치는데도 새만금 간척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논리에도 이런 속사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뻔합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 그 것보다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요.

/권오현기자 k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