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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라이프 / 동대문 의류도매상 박소영씨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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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라이프 / 동대문 의류도매상 박소영씨 24시

입력
200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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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 일대는 밤마다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룬다. 어둠이 깔리면 밀리오레, 두산타워, 프레야타운 등 패션몰 광장에는 최신 유행곡들이 쇼핑객들의 흥을 돋우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그리고 차량 경적음과 인파를 정리하는 경비원들의 호루라기 소리로 뒤범벅이 된다. 동대문 디자이너클럽 패션몰에서 의류도매점 ‘바찌’를 운영하고 있는 박소영(29ㆍ여) 사장. 그는 이런 번잡함을 벗삼아 8년째 낮과 밤이 뒤바뀌는 생활을 하고 있다.▼"지방상인들이 단골"

“올 겨울에는 그레이 톤 계열이 유행할 거예요. 여기 쥐색 신상(신상품)을 들여 놔 보세요.”

1일 밤 10시 디자이너클럽 2층 27호점 ‘바찌’. 박 사장이 전남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또래의 여자 상인에게 진열대에 놓인 옷을 설명하고 있다.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래요? 박 사장 믿고 한번 사 볼게요. 스무 장만 주세요”하고는 손가방에서 빳빳한 지폐 뭉치를 꺼내 세기 시작했다.

박 사장 옆에 있던 매장 직원 김유영(18ㆍ여)씨가 잽싸게 옷을 비닐봉지에 담아 넘기기까지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옷가게에서 으레 벌어지는 흥정이 없다. “척하면 통하는 지방 단골인데 흥정할 게 뭐 있겠어요. 여기선 거의가 이런 식으로 거래해요.”

박 사장의 가게 크기는 2평 남짓. 그야말로 ‘손바닥’ 만한 공간에 박 사장과 직원 김씨가 서 있고 진열대에는 의류제품이 겹겹이 쌓여있다.

박 사장은 이곳에서 식사도 하고 손님이 없는 사이에 쭈그려 앉아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한다. 이런 가게가 2층에만 100곳 가까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손님들은 가게 사이로 난 통로를 어깨를 부딪쳐가며 지나다닌다.

▼자정께 대목…낮보다 환해

2층으로 올라오는 입구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니 한 무리의 지방 상인들이 큼지막한 쇼핑 가방을 손에 들고 쏟아져 들어왔다. 그렇지않아도 붐비던 상가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 영업이 절정에 이르는 시각이다. 박 사장도 덩달아 바빠졌다. 언제 저 많은 옷을 다 팔려나 싶던 진열대의 신상들이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상가 건물 앞에는 지방 상인들이 타고 온 전세버스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장관이다. 대낮의 서울 도심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인파, 눈이 부시는 조명등, 귀가 찢어질 듯한 음악 방송…. 서울 시내 최고 쇼핑 상권이라는 동대문의 자정 풍경이다.

박 사장 가게가 입주한 디자이너클럽은 동대문에서도 손꼽히는 1급 패션몰. 도로 건너편의 밀리오레, 두산타워가 일반 쇼핑객들을 상대로 영업하지만 이 곳은 도매 위주여서 쇼핑객 대부분이 지방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상인들이다.

가게 주인과 사전에 연락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호객 행위가 이 곳에선 거의 없다. 요즘에는 밀리오레나 두산타워보다 옷값이 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반 쇼핑객도 늘어나는 추세.

▼오전 주문, 저녁에 옷 나와

쇼핑객들이 가방을 묵직하게 채우고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갑자기 심야의 적막감이 찾아왔다. 그제서야 박 사장은 인근 식당에 식사를 주문하고 금고의 돈뭉치를 꺼내 결산을 했다. “이런 손바닥만한 가게에서 얼마나 벌겠냐구요? 하루 매출 300만 원은 거뜬해요.”

박 사장은 샐러리맨들이 퇴근하는 시각인 저녁 8시에 가게로 출근한다. 박씨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디자이너 양희진(31) 김은주(23)씨와 여직원 김씨, 그리고 남편 주씨를 합쳐 4명. 디자이너와 직원 등 세 사람에게 나가는 월 급여가 총 400만 원대에 이른다.

박씨는 출근하면 가장 먼저 인근 하청 공장에서 보내온 옷이 주문대로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한다. 디자이너들이 옷을 디자인해 오전에 주문하면 그날 저녁에 옷이 만들어져 나올 정도로 빠르다.

“인근 2,000여 가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감각이 살아있는 옷을 만들어야 해요. 쉬는 날에는 명동이나 압구정동에 들러 최신 유행 경향을 살핍니다. 때론 뭐 하러 이렇게 힘들게 사나 싶기도 합니다.”

▼문화생활? 꿈도 못꿔요

박 사장은 이곳에서 일한 지 만 8년째다. 사입자(지방상인 의뢰를 받아 옷구매를 대행해주는 사람)와 매장 아가씨(판매원) 생활을 하다 지난 해 이맘 때 동갑내기 남편 주도형씨와 함께 수 억 원 대를 호가하는 지금의 가게를 냈다.

“남들은 돈 많이 벌어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이곳에서 버텨내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모르고 하는 말이예요.”

이곳 사람들은 문화생활과는 담을 쌓고 지낸다. 공휴일에도 가게 문을 열고 토요일 오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가 유일하게 주중 쉬는 시간. 그는 “돈은 들어오지만 막상 쓸 기회가 없는 생활이다 보니 이곳에는 재산가들이 꽤 있다”고 귀띔한다.

강남 일대의 금싸라기 땅이나 1급 상권내의 건물 주인들이 알고 보면 이곳 사장들이라는 것이다.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을 하는 이 곳 사람들은 잔병치레를 으레 있는 직업병쯤으로 여긴다. 박 사장도 어깨가 결리거나 머리가 지끈지끈한 일을 일상적으로 겪는다. 한편으론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 일부 상인들은 출근 전에 헬스클럽에 들르기도 한다.

태양이 붉은 빛으로 솟아오르는 아침 7시 무렵. 박 사장이 퉁퉁 부은 다리를 만지며 가게 문을 나설 채비를 하자 인근 은행 직원이 카트(손수레)를 몰고 나타났다. 박 사장이 그날 번 돈을 은행원에게 건네자 통장에는 숫자가 적혀 올라갔다. 박 사장의 하루 일이 무사히 끝났음을 알리는 표시였다.

글 이민주기자

mjlee@hk.co.kr

■동대문 패션몰 쇼핑가이드

동대문 시장의 쇼핑몰은 크게 소매와 도매 위주로 나뉜다. 디자이너클럽을 비롯해 APM, 뉴존, 혜양엘리시움 등은 밤 8시께 문을 열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상인들에게 물건을 팔고 오전 7시께 영업을 끝낸다. 큰 길 건너편의 밀리오레, 두산타워, 프레야타운 등은 오전 10시께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일반 쇼핑객들을 맞는다.

쇼핑몰이 워낙 크다 보니 자칫 옷에 지치고 사람에 지치기 십상이다. 처음 시장에 다니면서부터 자기 취향에 맞는 가게 번호와 연락처를 메모해두면 편리하다.

몇 번 다니다 보면 다른 곳을 볼 필요 없이 단골 가게만 가도 충분하며 교환하기 위해 다시 찾기도 쉽다. 동대문 시장은 대량 판매를 위해 옷 사이즈를 한국인 평균 체형인 55와 66위주로 팔고 있으며 이 크기를 벗어나는 옷은 소액의 추가비용을 내고 맞춤 주문하면 된다.

도매상가라고 해서 상인들만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동대문 도매상가는 예전에는 낱개로 사가는 일반 쇼핑객들을 불친절하게 대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들어 일반 쇼핑객들이 크게 늘어나자 달라졌다.

도매상가에선 물건값을 지나치게 깎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는 가게주인이 미리 에누리를 고려해 터무니없이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요즘은 정찰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물건값이 싸다 보니 충동구매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쇼핑에 나서기 전 필요한 품목, 색상, 디자인을 미리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도매 상가는 주중 쉬는 날 없이 매일 저녁 쇼핑객들을 상대로 영업하고 상가 종사자들끼리 토요일 오전 7시~일요일 오후 8시에 쉰다.

소매 상가는 일요일 오전 10시~월요일 오후 7시에 쉰다. 쇼핑몰들마다 주차공간이 있지만 워낙 인파가 밀리는 지역이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시간절약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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