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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하는 남자 김전한씨 "내일 아침은 월 해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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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하는 남자 김전한씨 "내일 아침은 월 해먹지?"

입력
2001.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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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주부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대략 5할대의 주부다.아내가 2할 정도이고, 나머지 3할은 장모님 몫이다. 훗날 아내가 이 글을 읽고 자신의 몫이 2할뿐이라는 것에 뚱할지도 모르겠다.

5할 대의 주부이긴 하지만 나는 전업주부에 가깝다. 그건 투자하는 시간상의 문제가 아니다. 생활습관 때문이다.

잠자리에 누우면 생각들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내일 아침은 무엇을 해 먹지? 감자볶음이나 할까? 가만 양파가 떨어졌는데, 냉동실에 묵혀 둔 음식들중에서 뭐 없을까? 화장실 타일바닥을 닦은 지가 언제였더라? 이번 주 안에는 삶을 빨래들을 일괄처리해야 되는데….

나의 원래 주된 일은 주부가 아니다. 글쓰기이다. 그런데 머리 속은 글쓰기작업보다는 살림살이 걱정으로 점령되어 버렸다.

누군가의 시킴으로는 불가능하다. 내 스스로 걸어 들어간 길이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난 주부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말인가?

사람이 무엇인가를 즐긴다는 것은 그 방면에 재능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글 재능보다 살림에 재능이 있다는 말인가?

맙소사! 가만히 따져보니 ‘그렇다’는 결론이다. 그러고보니 그렇네.

하지만 나라고 해서 처음부터 참한 주부가 되겠다고 결혼을 꿈꾸지는 않았을 텐데. 언제부터나는 씽크대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을까?

4년 전이다. 1998년의 겨울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김전한씨의 ‘살림 사는 남편 일기’ (출간 준비중)에서

“고기 간 것을 냉장고에 통째로 넣어두면 어떻게 해!”

“그럴 수도 있지.”

“조금씩 덜어 놓아야 먹을 때마다 녹여 먹을 것 아냐. 머리가 그렇게 나빠?”

“흥, 점점 좁쌀 영감이 되어가는군.”

어느 집이나 있을 법한 사소한 다툼. 시나리오 작가 김전한(39ㆍ서울 강서구 화곡동)씨의 집에서는 아내와 남편의 ‘대사’가 바뀌었다.

김씨는 살림하는 남편. 아침 6시,아내 정경희(35ㆍ숙명여대 홍보실)씨가 일어나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면, 남편은 밥을 짓는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35개월 된 아들 영동이와 백일 된 재동이를 씻기고, 놀아주고, 저녁을 준비하는 것은 김씨의 몫이다.

“왜 국민교육헌장에도 나와 있잖아요.‘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원래 집에서 이런 저런 일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집사람은 생선 구운 프라이팬과 과일바구니를 한 데 넣고 설거지를 하는 타입인데, 반면 컴퓨터 같은 것은 잘해요. 또 나는 ‘아줌마 운전’밖에 못해 집사람이 주로 태워 주지요. 어린 시절 대구에 살 때, 아버지가 출근 전에 파자마 입고 연탄집게 들고 다니시던 게 기억에 남아요. 유구한 집안 전통이랄까요.”

글을 쓰는 ‘반(半) 백수’와 결혼한 아내를 두고, 그는 오히려 자신이 ‘사기 결혼’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집사람이 생긴 것은 아주 여성스럽게, 살림 잘하게 생겼거든요.”

두 사람은 1988년 숙명여대에서 주최한 문학상 수상식에서 시 부문 당선자(남편)와 소설 부문 당선자로 만났다.

얼굴만 알고 지내다 98년 결혼했다. ‘적성에 맞는’ 사람이 살림을 하기로 했다. 두 사람이야 그래도 장모나 친가의 반응은?

“사위가 설거지를 하면, 대부분 장모는 ‘아니 김서방 왜 이러나’ 하잖아요. 근데 우리 장모는 안 그래요. 우리 어머니 역시 열렬한 운동가 누님을 둔 때문에 ‘살림하는 남자’에 대한 강박관념도 없고.”

며칠 전에도 ‘삼치 구이’(그냥 프라이팬에 굽는 게 아니라 여러 소스를 발라 굽는)를 차려 처가 식구들을 불렀더니 “모처럼 호텔 요리를 먹는 것 같다”며 모두들 신나했다고 한다.

김씨는 요즘 구청 복지관에서 개설한 ‘생활요리반’에 다니고 있다. 자격증반도 아닌 곳에 남자 수강생이 나타나니 아줌마들의 시선이 심상찮았다.

실업자려니 생각하고, 빙빙 둘러 사정을 물어 보더라고 한다. 요즘엔 “댁 아줌마는 너무 좋겠다”며 ‘청일점’ 김씨에게 맛있는 요리를 가장 먼저 맛보게 한다.

“우리 먹고 사는 게 그저 ‘끼니’를 때운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수준이었는데, 프로로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곳 풍경이 참 재미있어요. 세 시간씩 요리하면서 뭐하겠어요. 내내 수다 떠는 거지. 세상의 절반인 여자들의 마음 속을, 진짜 생활을 많이 알게 된 느낌이에요. 이젠 TV 드라마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씨의 원고료는 모두 아내 통장으로 들어가고, 김씨는 일주일에 10만~15만원씩 아내가 냉장고 위 바구니에 넣어 두는 돈으로 생활비를 쓴다.

아이 교육도 당연히 김씨의 차지. 아내가 외국 영어 교재의 복사본을 ‘007 작전’으로 구입해 왔으나 천자문을 가르치고, 숫자, 한글 공부를 시킨 것은 김씨다.

아이는 ‘극성 엄마’를 둔 아이처럼 비교적 조기교육의 혜택을 받고 자라는 편. 문제는 아이가 아버지를 3분 이상 떨어지지 않으려 해 집에서는 글은 고사하고 e-메일도 할 수 없다.

남편이 아내를 구박할 때 “집에서 하루 종일 놀면서”라고 타박하는 것은 절대 “용서 못할” 일이라는 것이 이제 김씨의 지론이다.

시나리오나 소설을 쓸 때는 근처에 사는 장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초동 국립도서관에서 일한다.

그래도 아침 저녁 가사는 그의 몫이다.

그가 요즘엔 좀 게을러졌다. 둘째 백일을 준비하러 대구에서 어머니가 올라 오시자 딱 부엌에 들어가기 귀찮아진 것이다.

“어머니가 와 계시면 게으름의 속성이 삽시간에 나를 닥치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가 ‘남성’으로서의 속성을 버리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한 번 술을 마시면 그야말로 밤을 ‘패는’ 타입인데, 새벽에 들어와 오전 내내 누워 있고만 싶은 심정이다. 이 때 아내가 잔소리를 하면 버럭 화가 난다. 아마 아내가 새벽에 들어왔다면 그 사실만으로 화를 냈을 텐데.”

그의 생활방식은 작가로서의 삶의 스타일을 많이 바꾸었다. 영화 작업할 때마다 지방 여관이나 콘도에 내려가 묵으며, 술에 쩔어 지내는 ‘영화판’ 스타일 보다는 필요할 때 만나 ‘맨 정신’으로 일하는 것이 좋아졌다.

아마 여자들이“아이들 때문”이라고 말했다간 “저래서 여자들은 안 돼”라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김씨는 이제 ‘여성적 스타일’이 좋다.

무엇보다 “살림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활을 위한 ‘잡문’이 아니라 소설과 시나리오에 매진할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내가 이런 저런 세상일의 ‘작전’을 함께 짤 수 있는 친구나 동지가 된다는 것, 그게 가장 기쁜 일 아닌가요. 세상의 관습적인 시선에서 해방되니, 참 좋네요. 그런데 그 갇힘과 해방이 진짜 마음 먹기 나름이에요.”

요즘 그는 “네 얘기 좀 영화로 만들어 보자”는 ‘안개기둥’의 박철수 감독 성화에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다.

■김전한씨는…

1962년 울진에서 태어나 69년부터 대구에서 살다 안톤 체홉의 소설과 희곡에 빠져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78년 가출.

83년 검정고시, 84년 계명대철학과에 입학했으나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

92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 ‘이방인’으로 당선됐고, 9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시로 당선. 시나리오집 ‘봉자’(박철수감독, 서갑숙 주연으로 지난 해 개봉)를 낸 데 이어 11월 27일 소설가가 되자 말문이 막힌 수다장이의 이야기를 그린 첫 장편 소설 ‘은행나무 길에서 상아를 만났다’(R&D 북 발행)를 발간.

곧 전업주부로서의 생활을 기록한 ‘살림 사는 남편 일기’를 낼 예정.

“허 참, 마누라 욕보여 내가 ‘용’ 되는 분위기인가요. 하하하” 아이를 안는 품세며 달라 붙는 큰아이 어르는 것까지 역시 ‘프로’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못난이라니요? 용기있는 남자들이죠"

‘나는 살림하는 남자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커밍 아웃’. 이런 ‘전업주부’ 남성이 늘어난 것은 IMF 구제금융 이후부터다.

경제한파로 직장을 잃은 남성들이 주부로라도 일하겠다는 것이 차선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잘 알려진 전업주부 남성으로는 1999년 여성신문사에서 주관한 ‘평등부부상’을 수상한 배춘복씨, ‘나는 오늘도 부엌으로 출근한다’라는 책을 낸 차영회씨, 2001년 ‘평등부부상’을 수상한 오성근씨, 30대 초반의 신세대 아빠 장준석씨 등이다.

이들은 서로 알고 지낼 정도로 친하다.

맏형 격인 배춘복(45)씨는 “몇군데 섭외가 들어온 TV프로그램에서 만나 ‘쪼다 쓰리(3)’로 통했는데, 최근에 장준석씨가 합류해 ‘쪼다포(4)가 됐다”고 말했다.

매스컴의 인연으로 만났지만, 이제 TV출연을 빌미로 서로 저녁이라도 함께 할 기회를 노리는 동호회 아닌 동호회가 되었다.

배씨의 경우, 사격용 총을 수입해 팔던 무역상을 운영했으나 IMF 위기 때 망하고 아내가 동대문 의류상가에 출근을 하게 되면서 집안일을 맡게 됐다.

유치원에 다니던 둘째 아이 때문에 누군가는 집에 남아 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처음에 동창회에 나가면 “무슨 짓이냐”는 반응이 많았지만, 이제 “상황에 따라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반응이 많다고 한다.

그는 “제대로 하자면 집안일이 직장일보다 오히려 힘들다”며 “힘이 센 남성이 확실이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디오장을 짜는 등의 인테리어 소품까지 직접 만드는 자신처럼.

차영회씨는 출판사 편집장을 하다 자신의 일을 찾기 위해 사표를 썼지만, 때마침 닥친 IMF 경제위기로 ‘주부’가 됐다.

그는 “똑 같은 전업주부 남성이라도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친구는 아내에게 당당하지만, 나 자신은 그렇지 못해 한 때 비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이들에게는 ‘못난 남자’가 아닌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자연스럽다.

서울대 주부문화연구소 구혜령 사무국장은 “그냥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권위적인풍토의 억압을 이겨내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용기”라고 말했다.

달라져야 할 것은 이들에게 ‘페미니스트’라는 사상의 굴레를 씌우는 주변의 시선이라는 지적도 있다.

여성문화웹진 언니네의 편집위원인 변형석씨는 “전업주부남성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 ‘돌연변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확실하다”며 “이들은 자신을 설명할 말이 많지 않아 사회에서 요구하는 페미니스트적 시각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업주부 여성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듯, 전업주부 남성에게도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풍토가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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