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자 박혜란(51)씨는 얼마전 버스에서 인기가수인 둘째아들(이 적ㆍ본명 이동준)의 팬이라는 젊은 여성으로부터 “어쩌면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곱다’ 보다 ‘늙었다’가 훨씬 강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놀란다.
“지하철에서 유리문에 늙고 지친 여자가 비치더라구요. 그런데 그게 내 자신인 거예요.”
그는 1999년 자궁근종으로 심한 출혈을 겪고, 결국 자궁과 난소를 모두 들어내는수술을 받았다.
마냥 무쇠 같던 몸이 망가지면서 본격적으로 ‘늙음’을 생각하며 글을썼고, 이를 묶어 ‘나이듦에 대하여’(웅진닷컴 발행)라는 책을 냈다.
정말 편안하고, 아름답게 나이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모든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젊어 보인다’는 말은 결국 늙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노화방지 화장품을 바르고, 수술을 받으며 발버둥쳐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획일성 때문에 더 심한 현상입니다. 노화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모두 아름다움에만 쏠리는 거죠. ”
늙는다는 게 마냥 서러운 것만은 아니다. 후배에게 ‘몸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하자 대뜸 “이제 좀 인간적으로 되었네?”라고 말했다.
“전에는 너무 힘이 넘쳐 비인간적이었대요. 이제는 가난과 고통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죠.”
호기심이 없어지고 기억력도 떨어지는 것도 몸의 자연스러운 명령이다.
“새로운 일을 추진할 힘이 없는데도 호기심과 기억력만 왕성하다면 그야말로 ‘노욕’이되는 겁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한발짝 물러서 지켜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입니다.”
그는 사회에 뛰어든 전업주부(93년 ‘삶의여성학’) , 아들 셋을 ‘공짜로’ 서울대에 보낸 이야기(96년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등, 항상 자신의 관심사를 맛깔스런 글솜씨로 공론화했다.
스스로는 “내가 생각해도 뻔뻔하다”고 겸연쩍어하지만 무미건조한 원론으로 일관했으면 그만한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이번 책도 “몸이 안 좋아지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에 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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