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은하수…"로 시작하는 '반달'(1942년 윤극영 작사ㆍ작곡)은 우리 어린 시절을 수놓은 아름다운 동요 가운데 하나다.한 여름 밤 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누워 은하수를 바라보며 '반달'을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조각배 같은 반달에 토끼가 타고 돛과 삿대도 없이 은하수를 건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반달이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광경은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것일까?
서정적인 노래에까지 과학적 잣대를 갖다 댈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러한 작업은 우리의 사고가 과학적 지식에서 얼마나 빗겨나가 있는 지를 알아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
달의 모양부터 살펴보자.
해가 진 다음에 서쪽 나라로 가는 달은 같은 반달이라도 하현달은 될 수 없고 상현달이어야만 가능하다.
상현달은 해가 질 무렵 남중(南中)해 정남쪽에 오기 때문이다.
다음은 은하수의 문제다. 은하수가 보이는 위치는 시각과 계절에 따라 다르다.
그 중에서도 상현달이 은하수에 걸리는 경우는 양력으로 3월이나 9월경에나 가능한 현상이다.
특히 3월 밤하늘에 달이 가로지르는 위치의 은하수는 그 폭이 비교적 좁다. 이 때문에 상현달이 은하수에 걸쳐지는 경우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9월 전후의 경우는 달의 운행 경로에 걸치는 은하수의 폭이 3월보다 넓게 보인다. 따라서 상현달이 은하수 한가운데 놓일 가능성이 약간 더 높다.
이로 미루어 보면 '반달'’에 나오는 분위기의 밤하늘은 1년에 한두 번, 그것도 9월 전후에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반달'이 그리고 있는 세계는 천문 현상에서는 보기 힘든, 다분히 상상에 기댄 세계인 셈이다.
이 동요 외에도 달과 별은 소재로 쓴 시도 많고, 유행가 가사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의외로 과학적 현상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이는 현대에 사는 우리가 밤하늘에 뜨고 지는 달과 별을 제대로 주의 깊게 살펴보지 못하면서 지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조들이 남긴 시가에 나오는 달이나 별에 대한 묘사는 과학적 사실에 어긋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만큼 선조들은 자연현상에 관심을 갖고 해, 별, 달의 운행을 일상 깊이 받아들이며 살았던 것이다.
서울교대 과학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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