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동대문 러시아 비즈니스 타운 in Korea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동대문 러시아 비즈니스 타운 in Korea

입력
2001.12.03 00:00
0 0

지난달 30일 오후2시 서울 중구 광희동의 한 골목길.항공화물(카고)회사인 에코비스 익스프레스 건물앞에서 금발머리의 아주머니 대여섯명이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을 보는 순간,이 골목길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주변을 둘러보면 이상한(?)글씨로 쓴 간판들뿐.라틴어는 아니고 그렇다고 동남아시아권어나 아랍어도 아닌,낯선 글씨체다.멋쟁이 아주머니의 털모자(샤프카)가 "북쪽에서 온…"느낌을 갖게 한다.서울 동대문운동장 건너편 '러시아 보따리상'타운의 모습이다.을지로6가에서 퇴계로쪽 광희빌딩에 이르는 뒷골목은 '러시아 거리'로 불린다.1990년대 초 러시아 보따리상들이 동대문 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이들을 상대로 하는 포장·운송회사와 환전소,의류상,러시아 전문음식점,카페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아 이제는 명실상부한 러시아 거리로 변했다.

■러시아 보따리상들이 머물다 가

러시아 타운은 대화호텔을 중심으로 한 인근 상권으로 형성된다.당초 파크호텔을 거점으로 삼았던 러시아 보따리상들이 최근에는 동대문 시장에서 가까운 모텔에 여장을 풀면서 '동대문 옷사냥'을 시작한다.하룻밤 숙박료는 3만5,000원정도.인천공항에 도착한 러시아인들은 대게 밤 늦게 이곳 모텔에 도착,하룻밤을 지낸 뒤 인근의 동대문 시장으로 흩어진다.

대화호텔 앞에서 만난 엘레나 카바예바(32·우즈베크 출신).왼손에 스웨터 모자 장갑 양말 등을 담은 큼지막한 비닐백을,오른손엔 옥수수 봉지를 들고 지나가다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한국상품 좋아요"라고 말한다.동대문 시장의 질좋은 원단을 어제 타슈켄트로 부쳤다"는 그녀는 "내일까지 동대문유행을 익힌 뒤 돌아가서 옷을 만들계획"이라고 말했다. 손에 든 옥수수는 저녕식사용이라고 한다.

광희동쪽 골목 깊숙한 곳의 러시아요리 전문점 '크라이 로드노이(고향마을)'에서는 러시아인 3명이 샤슬릭(양고기 꼬치구이)을 놓고 소주를 들이킨다. 분위기를 돋구는 노래는 러시아 국민가수 알라 푸가포바의 목소리라고 한다.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주방장 로라(45)는 "주말에는 플로프(양고기가 들어간 비빔밥)와 만티(찐만두),펠메니(물만두)등 고향음식을 먹기 위해 러시아인들이 멀리서부터 온다"고 자랑했다.주요 메뉴의 가격대는 4,000~5,000원선.러시아 수프를 전문으로 하는 호프집 '랑데뷰'나 '레멘호프'도 러시아인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다.

■러시아인에게 마음의 고향

러시아발 항공기가 들어오는 목~일요일,러시아 거리는 아연 활기를 띤다.이제야 본격적인 겨울철에 접어들었지만 동대문 시장에 봄신상품을 가져가기 위한 러시아 보따리상들로 붐비고 있다.러시아 보따리상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멀리는 모스크바에서,가까이는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프스크 등 동시베리아에서,그리고 우즈베크와 카자흐 등 중동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옛 소련문화권에 속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얼굴이나 취향이 서로 다르다.

이 거리의 주말 표정은 또 달라진다. 각지에서 흩어져,주로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러시아 여성들이 동대문 시장에서 쇼핑도 하고 고향 음식도 맛볼 겸 이 거리에 몰려들어 분위기를 바꿔놓는다.그때는 각 업소마다 늘씬한 미녀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 거리는 이제 눈에 띄게 퇴조했다"고 국제환전센터 대표이사 이상록씨는 말했다. 환란(IMF위기)직후 최고조를 맞았는데,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보따리상들이 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것이다.아직까지 이 곳을찾는 보따리상들은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동대문 단골들'이 대부분이라는 게 상인들의 귀띰이다.

이씨는 "2~3년 전만해도 하루에 30여명의 러시아 보따리상들이 돈을 바꿔갔지만 요즘에는 15명도 안된다"며 "그래도 이 거리는 러시아인들이 '루스키 고르도(러시아 고향)로 생각하기 때문에 동대문 상권과 함께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