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재정)의 문을 완전히 열어서라도 경기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공언이 빈말로 끝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재정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다.특히 정부가 올해 세금이나 각종 연기금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걷어들인 자금 중 최소 10조원 이상이 정부 금고에 방치된 채 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2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공공기금을 포함한 2001년 통합재정수지는 당초 목표인 4조5,000억원 적자에서 크게 벗어나 5조원 안팎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2일 “정부는 1, 2차 추경 등으로 올해 통합재정수지를 국내총생산(GDP)대비 0.8%적자로 편성, 경기를 부양할 계획이었으나 재정집행 실적이 지지부진해 오히려 GDP대비 1%의 흑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상을 뛰어 넘는 재정흑자로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징수한 세금 중 10조원 이상이 사용조차 되지 않은 채 내년 예산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재정집행 실적을 보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재정에서 10조원 이상의 여유 자금이 발생하게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 달 15일까지 집행된 재정(예산+기금+공기업 사업비)은 100조7,000억원으로 올 한해 목표치인 125조원의80.5%에 그치고 있다.
연말까지 불과 1개월 밖에 남지 않았는데 집행되지 않은 재정이 전체의 5분의1인 25조원에 달하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의 독려에도 불구, 보름에 4조~5조원 가량의 재정이 집행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 올 연말에는 15조원 이상이 재정 자금이 남아돌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정이 이렇자 주무 부서인 기획예산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통합재정수지 0.8%적자’라는 재정 목표를 달성하려면 12월 한 달 동안 20조원 이상을 집행해야 하지만, 무턱대고 예산 집행을 다그칠 경우 마구잡이 졸속 사업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정부 각 부처의 예산 집행 과정이 원래부터 더딘데다 지난해 말 여야 대치로 올해 예산안이 법정 기한(12월2일)을 훨씬 넘긴 연말에야 통과된 것이 대규모 흑자를 발생하게 만든 요인”이라고 말했다.
기획예산처는 내년에는 경기 부양을 위해 예산을 1월부터 집행할 수 있도록 각 부처와 공기업에 2002년도 분기별 예산집행 계획을 연말까지 수립, 통보할 것을 요구했다. 이밖에도 각종 융자 예산의 지원 대상과 조건을 미리 정해 내년 초 공고하고 대출해 줄 방침이다.
조철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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