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등학교 물리교사입니다. 7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면 내후년부터 고 2ㆍ3년생들은 모든 과목을 자신이 선택해서 듣게 됩니다. 지금도 어렵다는 이유로 물리를 기피하는데 이제 물리교사 자리까지 위태로운 것이 아닌 지 걱정입니다. 대입 과목 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앞으로 물리 교과는 어떻게 될 지 답답하기만 합니다.”교사 연수 과정에서 만난 물리교사가 인하대 물리학과 차동우 교수에게 조언을 구하며 보낸 e메일이다.
■과학교사는 자리 걱정
경기 고양시 A고교의 3학년 학급은 인문계 6개, 자연계 4개 반이다. 남학생이 이과로 몰린다는 전통은 깨진 지 오래다.
그나마 이과 4개 반은 학급 당 학생수가 26~34명으로 문과 학급 당 학생수에 크게 못 미친다.
학생수는 자연계와 인문계가 3대7 정도이지만 교사 수급을 위해 자연계 학급을 억지로 하나 늘렸다.
이 학교 물리 담당 정모(32) 교사는 “새교육과정에서 물리를 선택한 학생이 20여 명 미만이 된다면 학교는 현실적으로 그 학생들에게 다른 과목을 듣도록 종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학 과목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과학교육이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껴 중학교로 옮기려는 교사도 늘고 있다.
서울 J고 생물 담당 교사는 “학생의 과목선택권을 확대하면서도 실험 위주의 흥미로운 과학교육을 외면해온 교육 당국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의사는 좋지만 과학자는 싫다
자연계 수재들이 몰리는 의대가 기초연구는 외면하고 임상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인간 유전체 연구의 경우 외국은 대부분 의대를 졸업한 의과학자가 핵심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은 의대 연구비의 34%를 기초 의과학에 투자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초 의과학에 투자하는 연구비는 전체 의대 연구비의 4%. 올해 현재 전국 41개 의대 대학원에서 기초 의과학을 전공하는 인력은 40명으로 전체 대학원생의 2~3%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나마 이들의 대부분은 의대 출신이 아니라 자연대 출신이다. 반면 매년 3,000명 가량 배출되는 임상의는 공급과잉 논란을 빚고 있다.
서울대 의대 본과 3년 B씨는 “의대 졸업자의 상당수가 의대 대학원에 진학하기는 하지만 ‘박사’ 칭호를 따기 위한 것으로 레지던트 과정을 병행하면서 ‘부업’으로 연구 아닌 연구만 한다”고 털어 놓았다.
과학기술부가 ‘기초 의과학 육성종합계획’을 통해 2006년까지 의과학자 200여 명을 육성한다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여러 조건으로 보아의ㆍ치ㆍ한의대생을 끌어들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사의 ‘꿀맛’을 포기하고 고달픈 과학자의 길을 가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과학자 우대해야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연구기관 구조조정도 연구인력 부족에 한 몫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8~99년에만 경영혁신 등을 이유로 정부 출연 연구기관 연구원의 25%에 달하는 2,800여 명이 퇴출됐다. 학자금 지원 중단등 후생복지제도도 대폭 축소됐다.
연구원들은 구조조정도 좋지만 국가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인 출연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분야와 똑 같은 기준을 적용한 것은 편협한 처사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국과학기술노조 장순식(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안전규제 1실장)위원장은 “판검사, 의사들이 권력과 철밥통을 누리는 동안 과학자들은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과학교육 퇴보와 연구인력 부족 문제는 교육인적자원부나 과기부 등 몇몇 부처차원의 문제를 훨씬 넘어섰다.
과학교육 방식을 개선하고 과학자들의 사회진출을 다양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와 함께 근본적으로 국민들의 과학 수준을 높이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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