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정의를 수호한다는 대 테러전쟁이 야만과 불의를 저지르고 있다.전쟁의 본질에 눈 감은 채 대 테러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더라도, 인류가 힘겹게 정립해 온 문명과 야만의 경계선을 짓밟는 행위까지 용인할 수는 없다.
포로학살 등 문명 사회의 규범에 반하는 전쟁 행위는 테러와 마찬가지로 규탄해야 마땅하다. 이를 외면하는 어떤 논리도 참담한 위선에 불과하다.
아프간 북부동맹군과 미군에 의한 탈레반 포로 학살극의 경위는 모두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장을 목격한 서구 언론에 따르면, 며칠 전 순순히 투항했던 탈레반 포로들이 미CIA요원 2명이 심문을 위해 나타나자 대든 것이 발단이다.
요원 1명이 포로들에게 살해되자 다른 요원이 포로 여러명을 사살한 뒤 탈출했고, 포로들이 경비병을 제압하고 난동을 일으키자 현장에 있던 독일 방송팀의 위성 전화를 빌려 공중 폭격을 요청했다. 이어 공습과 북부동맹군의 공격으로 포로 수백명이 몰살했다.
미국은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결사항전하는 적을 상대한 전투 행위로 합리화한다.
그러나 일단 투항한 포로들의 결사 항전 의지가 의심스럽고, 손이 묶인 채 사살된 포로도 많아 의도적학살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사태 발생 전 탈레반 외국 용병들은 남김없이 사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공언한 것과 이번 사태가 무관하지 않다는 추측이다.
저항능력 없는 포로까지 몰살한 이번 사태는 명백한 제네바 협약위반이라는 국제사면위원회 등의 평가다.
전쟁범죄 여부를 조사하라는 요구도 나온다. 전쟁 주도국 미국과 영국을 제치고 유엔이 적극 나설 지 의문이지만, 탈레반포로 학살 사례가 잇달아 드러나면서 대 테러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도 새삼 높아지고 있다.
대 테러전쟁이 국제 정의와 평화, 아프간 민중의 자유와 복지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지켜 볼 일이다.
그러나 고상한 목표를 내 건 전쟁이 당장 야만적 학살극을 낳는 것을 한갓 에피소드로 여기면서, 전망이 불확실한 정의 구현을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의 혼란 속에 이라크 등에 대한 전쟁 확대를 거론한다.
이에 대해 오랜 봉쇄와 폭격으로 무력화한 나라를 다시 공격, 이라크 민중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 정의인가를 묻는 국제 여론이 많다.
우리도 북한에 대한 미국의 움직임에만 신경 쓸게 아니다. 이기적 국익을 떠나 국제 정의와 평화를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문명 사회의 모습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